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월터 리스턴과 씨티그룹

김병기 기자 <국제부>

금융산업의 국제화ㆍ탈규제화ㆍ전자화를 통해 현대인들이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월터 리스턴 전(前) 씨티코프 회장이 지난 19일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리스턴은 오늘날 미국경제의 최대 강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혁신적인 금융 시스템을 설계했다. 금융지주회사 체제, 자동현금인출기(ATM),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84년 은퇴하기 전까지 17년간 씨티코프 회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회사의 자산과 순익을 7배 이상 늘렸다. 또 금융산업 국제화에 앞장서 씨티코프를 91개국에 7만1,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다국적회사로 키웠다. 씨티코프는 98년 트래블러스그룹과 합병해 세계 최대 금융회사인 씨티그룹으로 다시 태어난다. 리스턴은 ‘자산을 늘리기보다 순익을 늘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경영철학을 견지하며 실속 있는 회사 만들기에 주력했다. 이 같은 철학에 힘입어 씨티코프는 극심한 불황기였던 75년을 제외하고 70년대 매년 15% 이상의 높은 순익증가율을 기록했다. 리스턴은 이처럼 신화를 일궈냈지만 그가 일하는 동안 씨티코프가 윤리나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은 리스턴의 유지를 제대로 받들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해 8월 씨티그룹 채권 트레이더들이 선물시장을 조작해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사건조사 5개월 만에 포착됐다. 이 사건은 24일 독일 검찰로 넘어가 관계자들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될 전망이다. 또 일본에서는 고객들에게 환율변동으로 인한 손실가능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대출 대가로 채권매입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난해 9월 프라이빗뱅킹(PB) 사업 부문 영업정지처분을 받기도 했다. 씨티그룹은 지난해부터 한국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미은행을 인수해 국내 은행산업에 뛰어들면서 ‘은행대전’을 촉발시켰다. 하이닉스반도체 비메모리사업 분야를 사들이고 올해는 인천정유 인수전에 뛰어드는 등 제조업체 M&A에도 적극적이다. 씨티그룹이 독일과 일본에서처럼 편법ㆍ탈법영업으로 금융질서를 혼란시키지 말고 한국에서는 리스턴의 정신적 유산을 계승해 ‘혁신경영’의 진수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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