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책만 파고든 학생 필요없다"… 대학들 예외없는 현장교육

[경제 百年大計 교육에서 찾는다] 2부. 선진교육 현장을 가다 <2> 명장의 요람 독일<br>공대는 물론 법대·인문대까지 최장 1년 인턴십 거쳐야 졸업<br>산학연 시스템 통해 인재 양성 "졸업후 미취업 학생 거의 없어"

독일 대학들은 유럽의 어느 나라 대학들보다 현장실습을 중시한다. 다름슈타트공대 분자생물학과 학생들이 교수의 지도하에 실습하고 있다. /사진제공=다름슈타트공대

지난 7월 마르부르크대 법대를 졸업한 라우라 슈밤(24ㆍ여)씨는 두 달째 다름슈타트공대 행정처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법대 출신인 슈밤씨가 실습을 하는 것은 단순히 경험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실습을 마쳐야만 2차 사법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학부시절 법원과 행정기관ㆍ로펌에서 각각 한 달씩 실습한 뒤에야 1차 시험을 볼 기회가 주어져 합격 후 졸업했다"며 "앞으로도 2년간 연수를 거친 후 상사의 의견서를 받아야만 2차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일의 대학교육은 실습으로 시작해 실습으로 끝난다. 졸업을 하려면 우리의 인턴십과 유사한 프락티쿰(Praktikum)이 필수다. 공대는 물론이고 법대와 인문대도 예외는 없다. 상아탑에 갇혀 책만 파고 든 졸업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게 독일 사회의 인식이다. 학생들의 현장경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실습 없이 졸업 없다"=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을 향해 차로 30분을 달리면 위성도시 다름슈타트에 도착한다. 인구 14만명의 소도시인 이곳의 중심은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공대인 다름슈타트공대다. 세계 최초로 전기공학과가 탄생한 전통의 공대다. 학생회관 앞 게시판은 방을 내놓거나 자전거ㆍ자동차 등을 팔려는 학생들의 광고물로 어지럽게 도배돼 있다. 많은 게시물에서 '프락티쿰 때문에 싼 값에 처분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6개월 이상 실습을 위해 학교를 떠나야 하니 헐값에라도 빨리 임자를 찾겠다는 광고다. 게하르트 슈미트 다름슈타트공대 학생과장은 "독일의 모든 대학생은 프락티쿰을 거쳐야만 졸업할 수 있고 석사과정을 시작하려면 별도의 실습을 해야 시험을 치를 자격을 준다"고 설명했다. 다름슈타트공대는 학부졸업 전까지 총 120시간의 프락티쿰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하루 4시간씩 일할 경우 30일이면 끝나지만 이것만 마치고 졸업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종합상사 프랑크푸르트 현지법인에서 일하는 전종억(33)씨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경력을 쌓기 위해 6개월에서 1년씩 프락티쿰에 나선다"며 "우리나라처럼 취업을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학생은 없다"고 설명했다. 실습학생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수작업을 맡는다. 예를 들어 건축과 학생은 설계도면을 컴퓨터 CAD로 옮기는 단순작업을 한다. 급료는 월 300~400유로에 불과하지만 실습 자체가 학업의 연장선인 만큼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배우기 위해 적극적이다. 현장보다 나은 학업의 장은 없다는 독일 사회의 인식이 오늘날 명품장인을 만드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산학연, 인재양성 책임진다=기자가 다름슈타트대의 취업률은 얼마나 되냐고 묻자 이 대학 관계자는 한참을 멀뚱히 바라보더니 우물쭈물했다. 한참 뒤에야 이 관계자는 "원하는 분야의 실습으로 학생들은 기업이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되고 기업들은 자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직접 만드는 효과가 있다"며 "우리 대학에서 졸업 후 일자리를 못 찾는 학생은 없다"고 말했다. 여느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독일 역시 이공계 대학의 중심에는 산학연 시스템이 있다. 벤츠ㆍ보쉬ㆍ메르크 등 대기업들은 물론 지역 중소기업들도 대학들과 손잡고 신기술을 개발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로 거듭난다. 크리스티안 아커만 다름슈타트공대 학술처장은 "산학연을 통해 회사는 학생들에게 인지도를 높이고 이미지도 관리하며 필요한 연구와 재교육까지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다름슈타트공대에서는 연 3,000만유로(약 450억원)를 산학연 연구 프로젝트에 투자하며 이와 별도로 1억2,000만유로(약 1,800억원)의 별도 연구기금도 마련돼 있다. 독일에서는 학생과 기업을 연결하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기관이 나선다. 대학 잡센터는 물론 연방정부와 주정부, 독일연구재단(DFG), 상공회의소, 노동청까지 발벗고 나서 학생 취업을 주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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