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35로 급소일격을 당한 최철한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수도 없이 당했던 역전패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겸 36으로 하나 찔렀는데 이 수순은 백의 형태를 자충으로 만든 악수였다.
“부끄러운 수순이었어요. 하수의 단수 비슷한 악수였어요.”
최철한의 고백. ‘하수의 단수’는 일종의 바둑 속담인데 초심자들이 공연한 단수몰이를 서두르는 것을 야유, 또는 경계하는 말이다. 원래 단수몰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껴 두었다가 팻감으로 이용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초심자들은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맛에 단수몰이를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기가 위기를 만났을 때는 허겁지겁 단수몰이부터 하고 보는 일이 많다.
실전보의 백36은 단수몰이는 아니다. 그러나 단수몰이와 비슷한 성격의 절대선수 자리. 다시 말해서 절대팻감이 되는 자리였는데 최철한은 무심코 그곳을 두어 치운 것이었다. 당황한 그는 계속해서 악수를 두어 고초를 자초한다. 38의 응수가 바로 그것. 39로 추궁당해 백대마가 끊어져 버렸다.
백36으로는 참고도의 1, 3으로 두는 것이 일단 최선이었다. 이 코스 역시 백이 즐거울 것은 없지만 실전처럼 급박하게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