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 과거 고가에 매입 싼값에 잇단 처분"예술품 시장은 한 나라의 위상을 반영한다"
세계적인 경매업체의 일본 사업체인 크리스티 저팬의 이와세 가즈노리 사장의 이 말은 적어도 일본의 경우에는 그대로 들어맞는다.
12년 전 8,250만달러라는 미술품 사상 최고 가격에 빈센트 반 고흐의 '의사 가체트의 초상화'를 사들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본이 어느 틈엔가 예술품ㆍ골동품 시장에서 '사들이기'보다는 '내다 팔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난 4일 전했다.
예술 시장에서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10여년 전 미국을 위협하는 세계 2위 경제대국에서, 장기 불황에 시달리는 '세계경제의 불안한 짐'으로 전락한 일본 경제의 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
이는 지난해 크리스티 저팬의 업무 가운데 80%가 '매각'쪽에 집중됐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이 거품기에 치렀던 값에 비하면 판매가 형편없다.
피카소와 반 고호, 세잔느, 모네 등 일본의 자산가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으며 사 모은 그림들은 대부분 매수 가격의 절반 이하, 때로는 15%도 안되는 헐값에 팔려 나갔다고 크리스티는밝혔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80년대 록펠러 센터 등 미국 자본의 상징을 차례차례 손에 넣은 일본이 지금은 국내 자산을 외국 자본에 내다 팔기에 여념이 없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모건 스탠리는 열흘에 한 건 꼴로 일본의 부동산을 인수하고 있으며, 골드만 삭스도 최근 몇 년동안 사들인 일본 국내 건물이 총 30억달러 어치 650개에 달한다는 것.
당연히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요지는 외국계 자본의 몫이다. 도쿄에서도 '노른자위'로 알려진 고급 쇼핑가 오모테산도(表參道)에는 단독 또는 일본 기업과 공동으로 부지 및 건물을 인수하는 외국계 자본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프랑스 LVMH모에헤네시 루이 비통의 경우 오모테산도에서도 핵심 요지에 땅을 사들여 내년중 보유 브랜드인 크리스찬 디오르의 세계 최대매장의 문을 열 계획. 이미 이 곳 땅값은 50% 이상 뛰어오른 상태다.
한편 국내 자산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과 발을 맞춰, 일본이 외국에서 보유하는 자산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일본 은행들이 보유하는 해외 자산은 지난 91년 이후 10년간 약 3분의 1로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 2월말 현재 은행들이 해외에서 벌인 기업대출은 91년보다 60% 줄어든 27조엔 남짓, 해외 예금액은 80%나 줄어든 10조엔 수준에 그쳤다고 최근 보도했다.
신경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