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넣는 수비수' 이정수(30ㆍ가시마)가 월드컵 무대에서 시원하게 한풀이를 했다. 그는 익히 알려진 대로 공격수였다. 지난 2002년 안양 LG(현 FC 서울)에 입단한 뒤 한 해 동안 공격수로 뛰었다. 이듬해 조광래 감독이 그에게 수비수로 포지션 제안을 권했다. 그는 "브라질 용병이 많아서 공격수로 뛰기는 어려웠다"며 "스피드와 제공권이 있으니까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잘한 선택인 것 같다"고 말했다. 못다한 골잡이로서의 꿈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현실이 됐다. 그는 그리스전에 이어 나이지리아와 경기에서 또 다시 득점포를 가동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2골을 기록한 그는 공격수들을 제치고 한국 대표팀 최고 골잡이로 우뚝 섰다. 더불어 월드컵 득점 랭킹에서도 다비드 비야(스페인), 루이스 파비아누(브라질) 등 7명과 함께 공동 2위(2골)에 자리했다. 한국 대표팀에서 2골을 기록한 수비수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스위퍼를 맡았던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 이후 2번째이다. 이정수의 나이지리아전 득점은 그리스전과 흡사했다. 기성용이 프리킥 기회에서 오른발로 감아 찬 볼이 수비수 벽을 넘어오자 그는 골문 앞으로 달려들며 머리를 갖다 댔다. 이정수의 머리에 맞은 볼은 다시 오른발에 맞은 뒤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국내 축구팬들은 특이한 골 장면에 '헤딩'과 '발'의 합성어인 '헤발슛'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극찬했다. 0대1로 한국이 뒤진 상황에서 이정수의 동점골이 들어가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역전됐다. 한국은 이후 공세를 퍼부었고 기세가 꺾인 나이지리아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결국 박주영의 역전 골이 터지며 한국은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지난해 일본 J-리그로 이적해 7골을 터뜨린 그는 16강전에서 또 한번 세트피스 득점을 노린다. 185㎝의 큰 키를 앞세워 공중볼 경합, 몸싸움 등에 능한 그가 골을 넣는다면 안정환, 박지성, 사미 알 자베르(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아시아 선수 월드컵 최다골(3골) 타이 기록을 세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