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강남 집값과 좀비

외국 공포영화의 정형화한 패턴 중 하나가 ‘좀비(zombie)’의 등장이다. 공포에 질린 주인공들은 으레 좀비들에 무차별 난사를 가하고, 쓰러졌나 하고 안도하는 순간 좀비는 스물거리며 다시 일어나 주인공을 비웃는다. 도대체 죽지도 않는데다 놀라운 전염 속도로 무리를 불리는 불가항력의 존재로 관객을 숨죽이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좀비의 공포성이다. 강남 집값이 재건축을 중심으로 연초부터 다시 들썩이고 있다. 새해부터는 ‘8ㆍ31대책’의 효과로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던 한결같은 예상을 무색케 한다. 원인을 짚어보니 별것도 아니다. 서울시가 고층 단지의 재건축 용적률 한도를 20% 올리기로 했다가 번복하는 촌극을 빚은 게 직접적 이유다. 안전진단 통과여부도 불투명한 은마아파트 같은 곳의 가격이 ‘용적률 20%’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벌떡 일어섰다. 다른 주요 재건축 단지들도 거의 실시간으로 반응을 보이며 은마를 따라나설 채비를 갖췄다. 사실 개발이익환수제, 기반시설 부담금, 양도소득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부과 등 재건축을 옥죄는 삼중사중의 강력한 올가미에 비하면 용적률 20%는 ‘조족지혈’ 수준의 호재다. 송파 신도시를 놓고 건설교통부와 서울시가 이견을 노출한 것도 재건축의 가격불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긴 힘든 요인이다. 그런데도 강남 재건축의 일어서는 반응 속도는 무서울 만큼 빠르다. 정부의 올가미에 걸려 까먹은 집값쯤은 한두 개 사소한 호재로 단숨에 회복한다. 숱한 경험을 통해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죽을 만하면 작은 빌미를 던져줘 다시 살려내는 당국의 의도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강남 주민들과 강남에 투자하려는 사람들, 강남을 겨냥해 끊임없이 총질을 해대는 정부의 의지를 떠나 강남은 그 자체로 ‘불굴’의 이미지를 가진 거대한 존재가 돼버린 것 같다. 그것은 피하고 싶어도 맞닥뜨려야 하고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서는 좀비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공포영화 속 좀비에 대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글대는 좀비를 뒤로 하고 도망치든지, 아니면 가공할 화력을 가진 조력자가 등장해 쓸어버리던지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공통분모가 있다. 좀비를 상대하는 등장인물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힘을 모아 대응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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