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결혼 조건

정기홍<서울보증보험 사장>

혼수가 양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첩장을 돌린 결혼식이 깨져버렸단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한 사람들이 불과 2~3년도 못 가 이혼하는 일이 흔해졌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결혼 상대를 고를 때는 따지는 것도 참 많다. 우선 외모가 어느 정도는 마음에 들어야 한다. 돈도 많이 있으면 좋겠고 요즈음 같이 어려울 때는 맞벌이할 수 있는 상대도 선호의 대상이다. 배경 좋은 집안이면 더욱 좋겠다. 시집살이는 물론 절대 사절이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췄다 해도 상대의 품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사랑의 깊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꼭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결혼 조건을 보면 나도 참 보잘 것 없었다. 가난한 집 장남에 집안도 내세울 것 없고 홀어머니에다 집 한칸도 없었으니 이를 데 없이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사람 하나보고 딸의 장래를 맡기겠다는 어른들의 용기와 사려에 감사해서 선뜻 마음을 빼앗겼다. 비록 우리 부부는 조건보다는 사람을 보고 미래를 약속했다고 자부했지만 역시 티격태격 싸우며 살기는 매한가지였다. 사소한 일로 상대를 자극하고 무심코 뱉은 말이 화를 돋군다. 말꼬리를 잡다가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분하고 억울해서 결혼 생활에 회의를 품기도 했다. 못난 짓이다.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냉정을 되찾은 뒤 생각해보면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도 모를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랑만 있다면 아름다운 동행이 보장되는 줄 알았는데 살면서 보니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상대의 약점까지도 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다는 걸 깨닫는 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다니…. 결혼이란 나와는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걸 터득하는 데 십여년씩이나 걸리다니…. 사람과 사랑의 실체가 이런 것인 줄 보다 일찍 알았더라면 결혼 생활이 훨씬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데일 카네기가 ‘인간관계론’에서 인용한 한 부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 부인은 교회의 자기계발 프로그램의 토의자료를 만드는 데 남편의 조언이 필요했다. 더 좋은 주부가 되기 위해 고쳐야 할 자기의 단점 여섯 가지만 적어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한 것이다. 아내의 약점이라면 당장 수백가지라도 나열할 수 있었건만 그는 즉답을 회피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그는 여섯 가지 대답대신 빨간 장미 여섯송이를 아내에게 전해달라고 꽃집에 부탁했다. 꽃다발 속에는 “당신에게는 더 이상 고칠 것이 없소. 나는 지금 당신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오”라고 쓰인 예쁜 카드가 놓여 있었다. 그날 저녁 그는 감격해 눈물을 글썽이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행복을 나눌 수 있었다. 위기에 처한 우리의 예비 부부들을 위해 커뮤니케이션프로그램인 ‘부부간 대화 요령’을 의무적으로 이수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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