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美 3분기 노동생산성 19년만에 최고치

미국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음에도 지난 3ㆍ4분기 미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이 같이 빠르게 향상되는 노동생산성이 경기를 바닥으로부터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인가. 기대가 높아지는 반면 빠른 생산성 증가율은 고용시장 위축 및 기업의 구조조정 가속화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비관론도 있다. 관련기사- - 지난 90년대 미국의 장기호황이 정보기술(IT) 산업에서의 발전과 이에 따른 생산성 증가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생산성 회복 추이는 지금 주목 받고 있다. 생산성 회복이 90년대 기술 발전의 효과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분석도 함께 나오고 있다. ◇19년 만에 최고치 노동생산성, 착시인가=이 달 초 미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3ㆍ4분기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전분기 대비 연율로 4% 증가, 지난 2ㆍ4분기보다 증가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10월부터 2002년 9월까지의 노동생산성 증가 속도도 5.3%로, 지난 83년 이래 최고치를 보였다. 2000년 이후 지속된 미국의 경기침체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생산성이 이처럼 높게 나타난 것에 대해 마침내 경기회복의 강력한 신호가 아닌가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최근 "생산성의 견고한 증가세가 경제활동의 지속적 지원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생산성 증가가 고용시장 위축 및 구조 조정 가속화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2000년도부터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기업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감원에 나서게 됐고, 이 같은 감원 결과로 노동자 한 명과 결합되는 자본재가 늘어 노동생산성이 증가한 것으로 비쳐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듯, 노동자 한 명당 근무시간은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0.1% 증가세를 보였고, 실업률도 5.7%로 소폭 상승했다.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고 직원들의 업무시간을 증가시키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 노동생산성 증가는 일종의 '착시'현상으로 생산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진정한 척도인 총요소생산성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자 1명이 기계 1대를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생산량으로, 이 지표에 변화가 없더라도 경기순환에 따라 노동생산성은 변화할 수 있다. 경기하락에 따라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고 노동자 1명이 여러 대의 기계를 사용하게 되면, 노동자 1명의 생산량인 노동생산성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낙관론 우세=지난 3ㆍ4분기 나타난 미 노동생산성 증가는 과연 경기순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90년대의 기술발전 효과가 아직도 산업의 각 부분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어서 생산성의 빠른 증가는 앞으로도 한 동안 지속되리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새로운 기술에 경제가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린스펀 FRB 의장이 "90년대 후반에 발생한 구조적 생산성 증가세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도 생산성이 높은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문가들 예측의 우선 근거는 지난 90년대 생산성 증가를 이끌었던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컴퓨터 칩 제조업체 인텔의 회장 크레이그 바렛은 컴퓨터의 계산력이 18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 적어도 향후 15년간은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설사 컴퓨터 산업의 기술 개발 속도가 늦춰진다고 하더라도 생산성 증가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IT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IT 산업의 생산성이 다른 산업에 비해 크게 높기 때문에, 이 산업의 비중이 커지기만 해도 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높아지게 된다. 지속적 생산성 증가를 예측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업간의 기술력 격차가 커짐에 따라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업의 투자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점. 기업간 기술력 격차가 커지면 새로운 기술에 투자했을 때의 예상 수익률이 높아져서 기업 투자가 촉진된다. FRB에 따르면 지난 75년 15%에 그쳤던 평균 기술과 신기술의 생산력 격차는 2000년에는 40%로 확대, 기업들이 신기술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생산성 증가가 경기회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생산성 증가가 지속되면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결국 기업 투자도 회복된다고 지적한다. 또 생산성 증가는 제품가격 하락을 유도, 수요견인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는 이 같은 선 순환 양상이 바로 나타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FRB를 비롯한 미 경제당국이 장기적으로는 미 경제가 견고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확신하면서도, 현재의 경기 침체가 언제 끝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언을 못하는 이유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