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라이프앤)만두 절대강자 '비비고 왕교자'의 비밀

“죄송합니다. 고객님, 오늘 들어온 제품은 모두 판매됐습니다. 내일은 좀 더 물량이 입고된다고 하니 오전 중에 오시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저녁 찬거리를 사러 온 주부들이 냉동식품 매장 앞에서 웅성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왕교자’가 추가로 입고됐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부랴부랴 매대를 찾았지만 금새 동난 것이다. 주부들은 이내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서울 월곡동에 사는 주부 김은미(37)씨는 “아이들 간식으로 군만두를 사러 왔는데 이번에도 빈손”이라며 “비비고 왕교자를 먹어본 뒤로는 다른 제품에는 손이 잘 안 간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왕교자’가 전대미문의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연간 3,000억원 수준인 국내 만두 시장에서 후발 제품이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 자체가 연구대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시중에 100여종의 만두가 있지만 비비고 왕교자은 연일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제품을 맛본 고객들은 하나같이 찐만두, 군만두, 만둣국으로도 제격인 ‘만능 만두’로 손색이 없다고 손가락을 치켜든다. 만두 시장의 ‘허니버터칩’으로 불릴 만큼 품귀 현상을 빚는 비비고 왕교자의 비밀은 뭘까.

◇“담백하면서 물리지 않는 만두를 개발하라”=2011년 초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육가공냉동식품센터에 만두 시장을 제패할 신제품을 개발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당시 CJ는 ‘백설 군만두’를 앞세워 근소한 차이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렸지만 고객이 가장 많이 찾는 교자만두에서는 해태 ‘고향만두’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야심차게 개발한 교자만두 신제품이 줄줄이 외면을 받자 전체 만두시장에서도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식품연구소에서 20년 넘게 만두만 개발한 조근애 수석연구원을 필두로 9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전담개발팀이 꾸려졌다. 국내 최고이자 최대 식품회사인 CJ제일제당의 명성에 걸맞는 ‘만두 어벤져스’가 결성된 것이다. 맛과 품질, 영양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모두가 의기투합했다.

개발팀은 전국 만두 맛집을 돌아다니며 최고의 만두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미세한 맛까지 파악해야 하기에 한 입 먹고 물로 헹군 뒤 다시 만두를 먹는 고통스러운 과정의 반복이었다. 연구실에 돌아와서는 매일 300개 이상의 만두를 직접 빚으며 상품화 작업에 매달렸다.

돼지고기 냄새가 손에 배 외부인을 만나기 꺼리는 연구원까지 생길 만큼 애썼지만 개발팀은 이내 난관에 부딪혔다. 재료를 바꾸고 공정에 변화를 줘도 완성된 시제품이 기존 만두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 결국 모든 과정을 백지화하고 제품 방향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담백하면서도 물리지 않는 만두 프로젝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크게 썬 원재료와 쫄깃한 만두피가 핵심 기술=연구원들은 비비고 왕교자를 개발하면서 고기와 야채를 큼직하게 썰어 원재료의 식감 살리기에 주력했다. 기존 만두는 고기와 야채를 한꺼번에 갈아 만두소로 썼지만 각 재료를 칼로 써는 공정을 도입한 것이다. 당연히 대량생산에 맞지 않는 방식이어서 현장의 반대가 높았다. 이에 따라 개발팀이 시제품을 개발하는 동시에 현장에서는 전용 생산장비를 도입하는 양동작전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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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크기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비비고 왕교자 1개의 무게는 35g으로, 평균 13g인 기존 교자만두의 3배에 달한다. 크기가 커지자 조리시간이 길어지고 만두피가 흐물거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000번 이상 밀가루 반죽을 두드리고 진공으로 반죽하는 만두피 전용장비를 개발했다.

쫄깃한 만두피의 식감은 살리되 반죽의 수분을 그대로 담은 비비교 왕교자의 만두피가 세상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웰빙 트렌드에 맞춰 각종 인공첨가물을 최소화한 것 역시 개발 초기부터 정한 원칙이었다. 좋은 재료와 첨단 공정이 투입돼 원가가 올랐지만 CJ측은 적게 이윤을 가져가고 많이 판매하겠다며 가격을 당초보다 낮게 책정하는 묘수를 뒀다.

◇첨단 기술의 결정체, 인천냉동식품공장=비비교 왕교자가 품귀 현상까지 빚으면서 일각에서는 CJ제일제당이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하지만 지난 23일 찾은 인천 신흥동 CJ제일제당 인천냉동식품공장의 비비고 왕교자 생산라인은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제품을 쏟아내고 있었다.

1987년에 준공된 탓에 공장 외부는 상대적으로 낡아 보였지만 내부는 첨단 기술의 향연장을 방불케 했다. 비비고 왕교자에 들어가는 각 재료의 특성에 맞게 돼지고기, 부추, 양파 등을 써는 전용 로봇이 중앙에 위치하고 밀가루를 반죽하는 장비는 연신 해삼 모양의 만두피를 최종 조립라인으로 만들어 보냈다. 냉장창고를 통해 농협 돼지고기와 CJ제일제당 밀가루가 완제품 그대로 공급되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이호언 인천냉동식품공장 생산팀 과장은 “제품 출시 이후 지속적으로 제조공정을 개선해 업계 최고 수준의 첨단 자동화 과정을 구축했다”며 “신선한 원재료를 첨단 설비로 제조해 맛과 영양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았다는 게 비비고 왕교자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이르면 올 연말부터 비비고 왕교자를 본격적으로 수출할 계획이다. 인천냉동식품공장에 도입한 첨단 제조설비를 미국·유럽·동남아에 그대로 구축한 뒤 부추를 고수로 대체하고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는 현지화 전략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전 세계인들이 일주일에 한번은 CJ제일제당의 음식을 맛보게 하겠다는 CJ그룹의 ‘비전 2020’을 비비고 왕교자를 통해 가장 먼저 시작하겠다는 포부다.

조근애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비비고 왕교자의 성공은 개발-생산-마케팅 3박자가 모두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며 “대표적인 겨울 메뉴인 만두가 비비고 왕교자 출시 이후 사계절 내내 즐기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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