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결국은 일본에 당했다…한일 국방장관회담 논란의 실체

결국은 일본에 당했다…한일 국방장관회담 논란의 실체

잘못은 일본이 하고도 피해와 상처는 한국만 입어


일, 외교적 결례 … 국방부 대일 협력 중단 필요

한민구 국방장관이 20일 오후 국방부에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과 얘기를 나누고있다. 양국 국방장관 회담이 끝난 후 일본측이 일부 합의를 깨 파장이 일고 있다.<BR><BR>한민구 국방장관이 20일 오후 국방부에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과 얘기를 나누고있다. 양국 국방장관 회담이 끝난 후 일본측이 일부 합의를 깨 파장이 일고 있다.





결국은 일본에 또 당했습니다. 한일 국방장관회담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펼쳐지며 ‘국방부가 거짓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은 분명히 일본 측에 있습니다. 먼저 합의를 깬 당사자는 일본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파장을 한국이 홀로 뒤집어 쓰는 형국입니다. 현장 취재 기자인 제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이 글은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알리는 기사인 동시에 언론에 속한 자로서의 반성문입니다.

먼저 최근 며칠간 기사 제목을 소개합니다.

뒤통수 친 日 “한국, 휴전선 이남만 지배”… 정상회담 악재로

국방부 ‘2012 트라우마’ 日만 만나면 쉬쉬 모드

일 방위상 “비공개 합의 안해”… 국방부 또 거짓 해명

‘韓영역 휴전선 남쪽’ 日방위상 발언 놓고 한일 파열음 고조

국방부, 한일 장관회담 거짓해명 ‘들통’…논란 일파만파

“자위대, 北 진입”…말 바꾼 국방부?

“자위대 한반도 진출”…국방부 ‘안이한 대응’도 논란

“일본에 뒤통수 맞은 것”…한일 국방장관회담 후유증

대부분 국방부의 ‘거짓’과 일본의 ‘뒤통수’를 질타하는 논조입니다. 신문과 방송, 보수와 진보성향을 넘어 거의 모든 언론이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저도 ‘국방부, 일본에 또 뒤통수 맞았나’라는 가제(假題)를 달아 기사를 데스크에 보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단면만 봤다는 자책감이 밀려옵니다. 왜, 무엇을 잘못했는지 살피기 앞서 사건의 실체부터 시간대별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2시 50분부터 서울 용산구 소재 국방부 청사에서 한민구 국방장관과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이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가졌습니다. 약 1시간 가량 이어진 회담이 끝난 후 국방부는 기자들을 상대로 회담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무엇보다 귀에 들어온 대목은 집단자위권을 표방한 일본 자위대의 유사시 북한 진입 문제였습니다.

먼저 한민구 장관이 말했습니다. “자위대가 북한지역으로 들어갈 때는 우리 측 동의를 받아야 한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에 따르면 “나카타니 방위상이 이에 대해 ‘한미일이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음날인 21일 아침 대부분 언론에는 비슷한 시각의 기사가 나갔습니다.

한일, 북한 유사시 자위대 진입 시각차 ‘뚜렷’

日, 집단자위권 동의범위에 ‘북한지역’ 언급 끝내 회피

韓 “북한 진입시 동의받아야” vs 日 “한미일 협력해야”


한·日, ‘일, 집단자위권 한반도 전개’ 시각차 여전, 동문서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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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민구 장관의 질문에 나카타니 방위상이 동문서답하며 ‘유사시 북한에 진입하겠다’는 의사를 간접 표명했다고 이 기사를 다뤘는데요. 국방부는 ‘일본과 이해가 넓어졌다’, ‘한국과 일본 국방장관이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는 것도 처음’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평상시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 행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요. 20일 밤, 도쿄에서 방위성 관리가 일본 기자들에게 공동보도문과 동떨어진 내용을 알렸다고 합니다. 한민구 장관의 ‘북한 진입시 한국 동의’ 발언에 대해 나카타니 방위상이 “대한민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범위는 휴전선의 남쪽이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고 답변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달이 이로부터 시작됩니다.

국방부가 해명에 나섰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분명하게 합의했다는 것입니다. “자위대의 북한 진주에 관련한 언론의 질의가 나올 경우에는 대외적으로 ‘한미일이 긴밀하게 협력해 나간다’고만 발표한다”는 내용인데요. 21일 오전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기자들의 질의가 쏟아졌습니다. ‘대한민국이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는 나카타니 방위상의 발언이 ‘비공개 합의 위반이냐’는 질문이 주류였습니다. (이 대목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실책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국방부 실무진들의 답변 골자는 이랬습니다. “분명히 합의했다. 북한 관련 질문에는 ‘한미일이 긴밀하게 협력해 나간다’만을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다른 기자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바로 이 대목에서 실책을 범했습니다. 일본이 합의를 깨고 흘린 나카타니 방위상의 ‘한국의 유효지배 범위는 휴전선 남쪽’ 관련 발언은 한일간에 ‘비공개하기로 합의했던 사안’이라고 보도한 것입니다. 다른 매체들도 21일 낮부터 ‘비공개하기로 합의한 부분이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국방부는 이런 기사가 쏟아지는 데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그 말이고 맥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일본은 이 틈은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습니다. 22일 한민구 장관과 환송오찬을 나눈 직후 나카타니 방위상은 ‘(한국의 유효지배 범위를) 비공개하기로 한국 측과 합의한 적 있냐’는 일본 기자들의 질문에 “없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국방부는 또 다시 뒤집혔죠. 일본에서 합의를 깬 보도 때문에 내놓은 해명마저 거짓말이 된 꼴이니까요.

처음에 소개한 ’험한 느낌의 기사 제목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나갔습니다. 과연 나카타니 방위상의 일본 기자들에 대한 답변은 진실일까요, 거짓일까요. 표리부동(表裏不同). 형식상으로 진실이나 내용상으로는 거짓입니다. 관련 질문이 나오면 ‘한미일 긴밀 협력만을 발표’하기로 합의한 것이지 ‘비공개’한다는 뚜렷한 합의는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해석하기에 따라서 ‘비공개 합의’로 간주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유사시 자위대의 북한 진주’ 문제가 한국의 입장에서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을 일본이 몰랐을까요? 뻔히 알면서 왜 집요하게 관련 발언을 이어 갔을까요.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목표가 생기면 정부와 언론이 상호 신뢰 아래 똘똘 뭉치는 저들이 생리에 비춰 볼 때 22일 환송 오찬까지 나누고도 또 한 번 한국의 속을 긁는 발언(한국과 비공개 합의 없었다)이 나온 이유도 어쩌면 일본 정부와 언론의 상호 교감 아래 계산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표리부동한 짓을 했고 그로 인해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가 나빠졌다면 저는 일말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반성합니다.

자성을 뒤로 하고 앞을 내다보려 합니다. 지금까지 흐름을 단계별로 정리해 봤습니다.

① 한일간 합의가 있었다.(북한 관련 건은 ‘한미일 협력’으로 대응)

② 일본이 20일 밤 이 합의를 깼다.

③ 21일 전혀 다른 발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국 언론은 국방부를 의심했다

④ 국방부는 합의 내용을 강조해 설명(북한 관련 질의시 한미일 협력만을 발표)했는데 일부 기자들은 이를 ‘비공개 합의’라고 썼다.

⑤ 국방부도 이런 기사가 나가는 동안 이렇다 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⑥ 일본 방위상은 ‘비공개 합의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⑦ 국방부는 연이어 거짓말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위의 흐름에는 미필적 고의와 의도적 고의가 나옵니다. 먼저 미필적 고의로 볼 수 있는 ④가 심각한 폐해를 낳았습니다. ⑦의 결과로 이어진 ⑥의 빌미를 줬기 때문이죠. ⑤의 행위 당사자이며 억울하게 당한 모양이 된 국방부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아 보입니다. 의도적 고의는 딱 하나, ②가 해당됩니다. 일본이 합의를 불과 몇 시간 만에 깨면서 모든 혼란이 튀어 나왔습니다.

문제는 분명한 잘못을 저지른 행위자인 일본보다 미필적 고의를 범한 것 같은 한국만 혼동을 빚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누가 잘못했고 실수했는지를 파악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합의를 먼저 깼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나라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만난 자리에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신뢰가 쌓일 수 있을까요. 일본의 행위는 보통국가로서 자격조차 의심하게 만듭니다.

물론 일본의 합의 파기에 대해 국방부 당국자가 두 차례 항의했다고 하지만 보다 분명한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태를 꼬이게 만든 ②번 행위, 즉 어떤 일본 방위성 관리가 도쿄에서 한일간 합의의 틀을 벗어나지는 발언을 했는지 규명하고 문책과 사과를 요구해야 합니다. 군사 협력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자간 안보가 아무리 중요해도 안보의 근원은 나와 상대방의 좌표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서로의 임무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합의 준수는 우리에게나 일본에게나 임무이자 의무였는데 일본은 위반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어렵게 재개된 한일 국방장관회담을 중시 여겼고 추가 협력을 원한다면 지금 일본의 임무는 책임자를 문책하고 사과하는 데 있습니다.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 덮어두고 가자는 식의 해법은 불신과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 뿐입니다. 한일 양국의 현명한 대처를 바랍니다.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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