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모국어가 경쟁력이다

가우디 독창성 모국어 사랑서 비롯









스페인의 명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찾는 이들은 무엇보다 웅장하고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건축물의 자태에 경외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성당 안에 들어가면 마치 숲 속처럼 마음이 평화롭고 정화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자연과 나무를 모티브로 삼아 자연 채광까지 일일이 계산해 성당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는 오늘날에도 혀를 내두를 만큼 독특한 건축물을 많이 지었다. 이런 독창성의 원천에 대해 카탈루냐 모국어와 고딕양식으로 대변되는 그 나름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도 독립국을 지향하는 카탈루냐 출신인 그는 한평생 스페인어를 거부하고 모국어 사용을 고집했다. 건축물을 짓다가 통역이 필요하거나 법정에서 변론할 때도 스페인어로 말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가 당대의 통념과 상식을 거스르며 숱한 건축물에 혁신과 창조성을 불어넣었던 원동력은 바로 열렬한 모국어 사랑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가우디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모국어의 존재가치를 새삼 일깨워준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시한 배경도 마찬가지다. 훈민정음 서문에는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끼리 서로 맞지 아니 할세.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쉽게 펴지 못할 놈이 많으니라"고 적혀 있다. 조선의 백성들이 매일같이 중국의 한자로 모든 생각을 표현하고 모든 문서를 작성해야만 하는 종속적인 상황이라면 영원히 중화 중심의 세계관에 머물러 우리의 정신적인 독립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세종의 걱정을 드러낸 것이다. 언어 능력이란 결국 모국어의 어휘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다양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고 해도 결국 사고의 틀은 모국어로 이뤄지고 진행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모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나타낼 수 없다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언어학계의 혁신가로 불리는 놈 촘스키가 일찍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갈파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모국어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만 창의력과 통찰력을 높이고 문화 역량을 키우는 시대가 닥쳐온 것이다.

흔히 글로벌 경쟁력은 콘텐츠이자 소프트파워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세계 각국이 소프트파워의 핵심으로 자국어 해외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 정부는 2004년부터 해외 곳곳에 공자학원을 세우고 중국어는 물론 중국문화, 중국학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120여개국에 450여곳의 공자학원이 운영되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500개의 학원이 세워질 계획이다. 일본 정부도 일본어와 일본 문화의 홍보기지 역할을 맡을 재팬하우스를 추진 중인데 연내 런던에 1호 센터가 설립된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세종학당이 이런 역할을 맡고 있다지만 중국의 예산규모에 비해 40분의1에 불과하다니 정부가 주창해온 문화융성이라는 구호가 무색할 지경이다.

수많은 언어학자들이 한글을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누구나 배우기 쉬운 문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글날 행사가 열리면 당국자들은 한글의 세계화를 적극 추진한다고 하지만 이제껏 공염불에 그쳤을 뿐이다. 글로벌 경쟁력이 소프트파워에서 창출된다고 하면서도 정작 한글로 대변되는 문화영토를 넓히는 노력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경제영토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문화영토를 넓히는 활동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모국어가 당장 밥상을 차려주지 않는다고 남의 것에만 욕심을 낸다면 노벨상을 타내는 일본과 중국을 영원히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어가 국가 경쟁력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올바른 방향을 놓고 고민해야 할 때다. 구텐베르크보다 앞서 금속활자를 개발한 사실에 머무를 게 아니라 한글의 힘을 키우고 오롯이 우리 것으로 만드는 일이 더욱 중요한 법이다. 제 569회 한글날을 맞아 혹시 나는 모국어를 홀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co.kr


관련기사



정상범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