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꽃



꽃-이안 作

나비가 앉았다고 모두 꽃은 아니라네

개똥 위에 앉은 네발나비여,

똥 속에 숨어 사는 꽃도 있나니!


네발나비여. 곤충은 머리 가슴 배로 이루어져 있고, 다리는 세 쌍 여섯 개라는 건 유치원 다니는 처조카도 줄줄 외는데, 너는 겸손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다리 두 개를 선뜻 진화의 조물주에게 반납한 것도 모자라 오늘은 꽃을 마다하고 개똥에 앉았구나. 어떤 사람들은 너를 '개똥 속에 숨은 꽃의 향기를 맡는 선지자'라 부르는구나. 어떤 사람들은 '예토가 정토고 눈물이 진주'라는 설법으로 읽는구나. 하지만 하늘을 날다가 가끔 땅에 내려앉는 네발나비야, 늘 땅에 붙어살다가 가까스로 네발사람에서 두발사람이 된 호모사피엔스는 너처럼 겸손만이 목적은 아니었단다. 발바닥은 똥을 밟아도 손바닥은 꽃을 만지고 싶었단다. 우리는 아직도 똥은 구리고 꽃은 향기롭단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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