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흔들리는 수출 돌파구는 없나] <2> 널뛰는 환율… 무기력한 외환당국

미·일 자국기업 보호에 속수무책… 원화 실질가치 12.5% 치솟아


당국, 시장쏠림 방지위한 일상적 개입마저도 기피
원화가치 10% 오르면 기업 수출액 4.4% 곤두박질

환리스크 대책 없는 중기에 헤지방편 만들어주고
환율개입에 민감한 美·IMF 설득할 금융외교 필요
80년대 엔고시대 생산력 키운 日 타산지석 삼아야


환율이 연일 출렁대면서 수출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방향도 없고 하루 10원 넘게 널뛰는 것이 일상이다.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하던 외환당국은 최근에는 아예 존재감이 없다. 가뜩이나 해외에서 악전고투하는 수출기업들은 종잡을 수 없는 환율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다.

확실히 원화 가치는 눈에 띄게 상승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원화의 실질가치를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지수 평균은 112.5였다. 기준연도인 2010년(100)에 비해 12.5% 올랐다. 세계 각국의 화폐 가치는 경쟁적 돈 풀기로 하락하는 반면 우리는 막대한 경상흑자로 원화 가치가 올랐다. 실질실효환율지수는 각국의 통화 가치 변동폭에다 교역비중·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해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정확히 보여준다. 원화 실질가치는 전 세계 주요국 중 여섯 번째로 높았다.

미국·일본 등 기축통화 간의 힘겨루기에서 한국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달러·유로·엔, 최근에는 위안화까지 (환율전쟁에) 나서지만 우리나라는 메이저 통화가 아니다"라며 "소극적 개입은 할 수 있겠지만, 하더라도 메이저 통화들과의 교환비율에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시장의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일상적 개입(스무딩 오퍼레이션)마저도 기피하는 분위기다.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로 미국의 눈치가 보여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경상흑자 규모는 1,100억달러로 GDP 대비 8%대에 이른다. 이는 수출강국인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최근 외환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나마 작동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가계부채 때문에 금리를 내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환율을 통해 개입할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예상보다 환율이 10% 추가 하락할 경우 기업들의 수출액은 4.4%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대기업은 체계적으로 환율에 대응하는 환헤지 시스템을 갖췄지만 중소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대기업은 포트폴리오가 있지만 중소기업은 환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환헤지 여건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때 정부가 버텨준 고환율이 수출전선의 우군인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일시적 효과만 있을 뿐 근본적인 처방책이 되지는 못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환율을 인위적으로 내리는 것은 무리수"라며 "환율 타기팅을 하면 오히려 위기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환율에 기대지 말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어느 정도 수출산업의 보호막이 될 수는 있지만,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산업 경쟁력 자체를 높이는 것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세 배나 강세일 때 연구개발(R&D)과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력을 끌어올렸다"며 "우리도 규제비용을 절감해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환율 영향을 덜 받는 최상급 제품과 서비스 산업 개발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권 원장은 "단기적으로는 국제금융외교에 적극 나서 우리 환율 개입에 민감한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을 설득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가 내수와 수출을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데 우리나라는 생산설비가 해외수요를 전제로 만들어진 경제구조다. 수출이 안 되면 내수도 죽는다"며 "해외에서 우리나라는 결국 수출기업의 실적으로 평가된다"고 강조했다. /이연선·김상훈기자 세종=이태규기자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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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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