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검사 성적표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검사(檢事)는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임용되면 자신은 물론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 동네잔치를 열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예전 드라마에서는 젊은 나이의 검사에게 머리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영감님'이라고 존대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님'자로 존칭한 것은 그만큼 검사라는 직업이 갖는 무게와 책임감이 크다는 의미였지 싶다. 거악을 뿌리 뽑아달라는 국민의 기대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20년 전인 1995년 SBS에서 방영된 '모래시계'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검사의 주가를 한껏 띄운 TV드라마로 기억된다. 이 드라마의 모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검사 출신 정치인은 슬롯머신 검사로 불리며 일약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검사의 몸값이 확 떨어진 느낌이다. 법조인이 매년 1,000명씩 쏟아져 나오면서 검사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낮아진 탓도 있을 듯하다. 그 때문인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0년 10월 개봉한 영화 '부당거래'에서 검사는 거악을 척결하기는커녕 부동산업계의 큰손으로부터 소위 '스폰'을 받고 악과 결탁한 모습이다.

강직하기보다 무능하고 우스꽝스러운 짓만 골라 하는 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것일까. 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검사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사들이 검사의 직무를 점수로 평가하고 등급을 매겨 내년 1월부터 공개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검사성적표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취지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 견제. 대검에 따르면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참고인·피의자가 올 들어 6월까지 15명, 최근 6년 새 79명에 달한다고 한다. 검사를 평가한다는 발상은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물론 수사 공정성 침해 등 우려의 목소리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검사들이 불만을 제기하기에 앞서 할 일이 있다. 왜 평가제까지 등장했는지 먼저 자문해보는 것이 순서이지 싶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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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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