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미국 해군의 구축함이 중국이 영해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의 중국 인공섬 12해리(약 22.2㎞) 이내를 통과해 항해했다. 지난해 중국이 인공섬 건설을 시작한 뒤 미국 군함이 남중국해 근해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미 정부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정기적인 해군 파견을 공언해 양국 간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 당국자는 해군 이지스 구축함 라센함이 남중국해 스프래틀리제도(중국명 난사군도)의 수비환초(중국명 주비자오) 12해리 이내를 이날 오전 항해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승인한 라센함의 초계작전에는 미 해군의 대잠초계기 P-8A과 P-3도 함께 투입됐다.
라센함은 지난 1999년 7함대에 배치된 9,200톤의 알레이버크급 대형 구축함으로 대공ㆍ대함ㆍ대잠수함 등 입체적 전투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동안 미 정부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스프래틀리 해역에 군함을 파견하기는 2012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미 국방부 관리는 로이터에 "추가적인 초계작전들이 몇 주 안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중국해가 공해인 만큼 항행의 자유를 행사하고 중국의 실효적 지배와 군사적 해양진출 가속화에도 제동을 걸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침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어 양국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힘들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남중국해 해역은 석유 등 연간 5조달러의 물동량이 통과하는 세계 최대 무역항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 등으로 '아시아 중심축(Pivot to Asia)'을 가속화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다. 더구나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각각 110억배럴, 190조세제곱피트로 추정되는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은 남중국해의 80% 이상에 대해 일방적인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7월에는 대만·베트남·필리핀·브루나이 등 주변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스프래틀리제도에 인공섬을 완공하고 국제법상 공해로 간주되는 섬 주변 12해리를 중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장 중국 정부는 미국의 구축함 파견에 대해 "주권을 침해했다"며 반발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경거망동하며 쓸데없는 말썽거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주하이콴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도 "항해와 비행의 자유를 구실로 삼아 자국의 무력을 과시하고 다른 나라의 주권과 안보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미중 간에 긴장감이 커지면서 다음달 중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정상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또 한번 충돌할 가능성도 커졌다. 양국 갈등이 증폭되면 한국에도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1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압박한 바 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