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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청산에 살리라'라는 노래를 좋아하셨다는데 이제 그곳에 가셔서 편안히 쉬셨으면 좋겠네요" "경제도 정치도 위기인데 그와 같은 정치인이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26일.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한파에 눈까지 흩날렸지만 한국 현대사를 정통으로 꿰뚫은 '거산'의 마지막 가는 길은 추모 물결로 넘쳐났다.
이날 서울시내 곳곳에서는 TV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영결식을 시청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시민들은 한결같이 영면에 들어간 YS와의 작별을 아쉬워했다. 일부 시민들은 황교안 국무총리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할 때는 슬픔을 이기지 못한 듯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시민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이자 민주화의 초석을 놓는 데 혼신을 다했던 지도자를 잃은 데 대한 상실감을 토로했다.
안영균(30·회사원)씨는 "공도 있고 과도 있는 대통령이지만 지난 수십년간 한국 정치사에 빼놓을 수 없는 영향을 준 거인이라 생각한다"며 "경제도 정치도 위기인데 확고한 리더십 아래 뚝심 있게 정책을 추진한 김 전 대통령 같은 정치인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 서거가 가져온 화합의 분위기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산적한 현안을 앞에 두고도 정쟁을 일삼고 있는 정치권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임화성(30·학생)씨는 김 전 대통령을 화합의 상징으로 기억했다. 임씨는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국민 모두가 한마음이 돼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것 같다"며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도 빈소를 찾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도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고 마치 시대의 갈등을 넘어선 화합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날 집에서 TV를 통해 영결식을 지켜본 주부 김주희(45)씨는 "서거 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열풍이 부는 것은 우리 사회의 화합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며 "그가 남긴 화합의 정신을 정쟁을 일삼는 여야 정치인들이 몸으로 실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YS·DJ·JP의 이른바 '3김'으로 대표되는 한 시대가 저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최민희(55·여)씨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니 과거 3김으로 대표된 '민주화 운동 시대'가 이제 저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국민 모두가 각자 자기 살기 바쁜 요즘 세태를 보면 시대를 관통한 공동체 의식과 사회에 대한 열정이 그리워진다"고 아쉬워했다.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와 경남도청 광장에 차려진 분향소에도 조문 마지막 날인 이날까지 막바지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경남도청 분향소에는 이날 오전부터 출근길에 오른 공무원과 회사원 등을 비롯해 지역 소모임 회원들로 보이는 단체 조문객이 삼삼오오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도는 이날 오전에만 500여명의 조문객이 도청 분향소를 찾은 것으로 추산했다. 경남에는 도청을 비롯해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와 인근 통영·진주·양산 등 12개 시·군에 설치된 14곳의 분향소에 지금까지 2만 3,000여명의 조문객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추모의 글이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민주화의 한 획을 그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안 했으면 이 나라가 어찌 됐을지' 등의 글을 올리며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