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포드의 날과 사라진 소득주도성장론




‘세계 경제 역사상 초유의 사건’, ‘산업자본이 노동에 선사한 가장 고결한 선물.’ 미국 신문들은 굵직한 크기의 헤드 라인 밑에 ‘포드의 날’이란 부제목도 달았다. 언론의 찬사를 이끌어 낸 것은 자동차 제조업자의 헨리 포드의 결단. 일당을 2.35달러에서 한꺼번에 5달러로 올렸다. 작업시간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였다.

1914년 1월 5일 디트로이트시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헨리 포드가 직접 발표한 신년 임금인상 계획은 미국을 들끓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동종업계 경영진들은 ‘포드는 공산주의자’라고 씩씩거렸다.(포드는 그 반대로 공산주의를 혐오해 반공을 내세운 히틀러의 집권과 경제 정책을 적극 도왔었다.)


포드의 발표가 전해진 뒤 디트로이트시에 난리가 났다. 구직자 1만 여명이 포드사 하이랜드 공장 앞에 장사진을 쳤다. 다음날에는 1만5,000여명이 몰려들었다. 포드사는 몰려든 구직자 가운데 4,000여명을 뽑아 썼다.

결국 노동자들이 ‘포드를 본받으라’며 이직하려는 통에 다른 자동차 업체는 물론 미국 제조업 전체의 임금 수준이 크게 오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노동자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을 통해 주택과 자동차, 라디오와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계층으로 떠올랐다.

누구보다 큰 덕을 본 당사자는 헨리 포드. 명성은 물론이거니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적을 올리며 탄탄대로를 내달렸다. 3교대로 공장을 쉴새 없이 돌려도 생산이 수요를 못 따라갔다.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구매력이 높아지며 포드의 T형 승용차는 더욱 많은 잠재고객이 생겼다. 임금 상승의 선순환 구조는 192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다.


포드는 왜 임금을 두 배 이상 인상하는 결단을 내렸을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이기심과 맥락이 같다. ‘우리가 매일 신선한 빵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제빵업자나 푸줏간의 동정심이나 이타심 덕분이 아니라 돈을 벌고자 하는 이기심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포드도 ‘이윤 동기’에서 임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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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의 목표는 안정화. 사람들이 작업대를 오가며 노동하던 작업 방식을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바꾼 뒤에 예상하지 못한 난관을 임금 인상으로 넘었다. 임금 인상 전 상황은 심각했다. 결근과 태만, 이직이 심해져 생산 효율이 크게 떨어졌다.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에 결근율은 10%, 이직률은 370%로 각각 두 배 이상씩 올랐다는 보고서에 대한 포드의 최종 대책이 바로 ‘획기적 임금 인상’이었다. 포드의 재무 담당 임원인 제임스 코즌이 일당을 3달러에서 3.5달러, 3.75달러, 4.75달러로 올리는 방안을 조심스레 보고하자 포드가 ‘기왕 하려면 크게 하자’며 5달러로 결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포드의 날’로부터 16년이 흐른 1930년, 포드는 또 한번 임금을 크게 올렸다. 대공황기를 맞아 기업인들에게 ‘임금을 삭감하지 말라’고 부탁한 후버 대통령의 권고에 호응해서다. 결과는 예전과 정반대. 급격한 수지 악화로 포드 자동차는 1년이 채 못 지나 인원과 급여를 삭감할 수밖에 없었다. 불황의 골이 워낙 깊은 데다 포드사의 자금 사정이 예전만 못했던 탓이다.

포드가 보여준 두 차례 임금 인상 사례는 각기 제 입맛에 따라 인용된다. 노동자들은 첫 번째 사례를 강조하고 경영진들은 두 번째 임금 인상 실패 케이스에 방점을 찍는다. 무엇이 맞는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점은 하나 있다. 임금인상을 통한 경기 진작은 오늘날에도 유용한 정책 수단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일본의 아베 총리가 기업인들에게 임금 인상을 호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 2014년 7월 취임 직후 ‘소득 주도 성장론’을 내세우며 경기부양을 시도했으나 말로 그치고 말았다.

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그토록 경고하면서도 경제 장관들이 정치를 향해 줄줄이 사퇴하는 웃기고도 슬픈 현실…. 소득과 관련된 모든 지표는 최악인 상황에서 헨리 포드의 102년 전 결단이 새벽에 꾸었던 꿈처럼 희미해져 간다./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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