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키드’는 서울(7~8월)이 아닌 대구(5~6월)에서 투어를 시작한다. 아시아 최초로 프렌치 오리지널 내한 공연에 나선 뮤지컬 ‘아마데우스’도 3월 3~6일 대구 관객을 만난 뒤 12일 서울 공연에 들어간다. 레미제라블도 2012년 초연과 이번 재연 모두 서울이 아닌 용인·대구에서 먼저 선보였다.
대형 뮤지컬 제작사 상당수는 그동안 ‘첫 공연=서울’을 마치 공식처럼 지켜왔다. 서울이 관객 규모가 가장 큰 지역인데다 대형 극장도 많이 보유해 초·재연 불문하고 투어의 ‘당연한 출발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내 치열한 대관 경쟁은 ‘선 지방 후 서울’ 공연을 가속하고 있다. 서울에 공연장이 집중돼 있다지만 10여 개 안팎의 대극장으로 내한을 포함한 수십 편의 라인업을 모두 소화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대극장의 경우 1~2년 전 예약이 끝날 정도로 대관이 어렵다”며 “투어 전체 일정을 고려해 지방을 먼저 돈 뒤 서울을 대관 가능 기간에 끼워 넣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방 공연 시장의 성장도 한몫을 하고 있다. 대구를 중심으로 용인·성남 등에 대형 공연 시설이 들어서고 관객 수요도 늘어나며 ‘제2 시장’으로서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레베카도 6일 서울 개막에 앞서 지난해 12월 부산과 대구를 먼저 찾았는데, 평균 80% 이상의 높은 관객 점유율을 기록했다.
업계에선 이 같은 변화를 ‘서울과 지역의 유기적인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지방의 역할이 커지면서 작품 완성도와 서울 공연의 브랜드를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미국은 지역 투어를 통해 완성도를 높인 뒤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뮤지컬이 대다수”라며 “이 같은 시스템 덕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는 사실 자체가 높게 평가되고, 동시에 브로드웨이 작품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지역이 단순한 실험 시장에서 나아가 작품 초기 개발과 관련 인력 육성의 중추가 되는 셈이다. 대표적인 예가 뮤지컬 투란도트다. 대구시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공동제작한 이 작품은 2011년 대구 초연 이후 꾸준한 보완을 거쳐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한 달 간 장기공연을 펼쳤다. 대구 공연이 무대 디자인과 영상·의상에 변화를 준 1차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면 오는 2월 개막하는 서울 공연은 여기에 새로운 음악을 더한 2차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원 교수는 “지방에서 개발하거나 첫 선을 보인 작품이 완성도를 높여 서울에 입성하고, 그렇게 인정 받은 작품이 다시 지역과 외국으로 가는 유기적인 관계를 모색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