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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공간 비즈니스' 이제는 '인큐베이팅'이다

단순 오피스 빌딩 사무실 임대 벗어나 세미나·컨퍼런스 통해 실무지식 제공

세무·법무·회계 등 다양한 업무 지원… 입주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까지 나서

"개방·차별화된 공간이 창의력 자극"

대기업 사내벤처도 입주 적극 검토



#건물 외벽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비춰 영상을 구현하는 건축자재인 '미디어파사드'를 만드는 회사 '태그솔루션'을 설립한 박승환(24) 최고경영자(CEO)와 공동창업자인 이광호(23) 최고기술경영자(CTO). 그들은 지난해 3월부터 서울 마포구 공덕역에 위치한 '르호봇 프라임 공덕 비즈니스 센터'에서 약 23㎡ 규모의 작을 방을 빌려 사업을 준비 중이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휴학하고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한 둘은 학교 안에 있는 창업센터가 아닌 민간이 운영하는 공간에 더 매력을 느꼈다. 인프라가 좁고 기회가 한정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인프라와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초기 창업 기업들과 교류할 수 있는 학교 밖 세상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르호봇에서는 르네상스소사이어티나 살릉드르호봇 같이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와 행사를 통해 업무 공간에서 직접 전문가와 네트워킹을 할 수 있다"며 "학교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공간 비즈니스를 하는 서비스드 오피스에 입주하는 사례가 늘면서 공간 비즈니스가 '인큐베이팅의 요람'으로 부상하고 있다. 초기 창업 기업들에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투자자다. 공간 비즈니스 업체는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털(VC)과 같이 창업 기업들에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휴 투자자들을 통해 창업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 VC나 엔젤투자자들이 제공하기 어려운 법무·세무·회계 등 다양한 업무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창업 기업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다.

◇공간 비즈니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인큐베이팅으로 진화하기까지=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싹트기 시작한 공간 비즈니스는 초창기에는 단순히 도심 내 오피스 빌딩을 잘게 쪼개 임대해주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임대료 부담이 적은 작은 사무 공간을 필요로 하는 막 사업을 시작한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창업 공간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지만 어디까지나 공간을 빌려주고 필요한 집기 등을 제공하는 수준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넓은 오피스 공간을 나눠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혁신적인 모델이었다. 입주사의 편의를 위해 세무·법무·회계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인큐베이팅'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힌 업체는 없었다.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춘 곳도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공간 비즈니스를 넘어 창업자들을 적극 지원하는 인큐베이팅에 초점을 맞춘 회사가 생겨나고 있다. 1998년부터 공간 비즈니스를 시작한 르호봇이 대표적이다. 르호봇도 처음부터 인큐베이팅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그러던 로호봇이 인큐베이팅에 눈을 뜬 것은 공간만 파는 공간 비즈니스는 필연적으로 레드 오션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목영두 르호봇 대표는 "10여 년 전부터 공간 비즈니스 이후의 단계를 생각했으며 당시에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공간 위에 있는 사람들이 잘 생존하고 성장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국내 창업학 1호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목 대표 개인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초기 창업자들을 멘토링해주는 게 전부였다.

공간 비즈니스에 인큐베이팅이라는 개념을 조금씩 채워가던 르호봇이 공식적으로 인큐베이팅을 시작한 것은 3년 전인 2013년부터다. 당시 창업교육센터 건립지원사업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르호봇은 같은 해 11월 송파에 순수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르호봇 창업 보육센터'를 열었다.

목 대표는 "10여 년 이상 공간 비즈니스를 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3대 자원인 공간·사람·네트워크를 접목하면 창업자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스타트업에 판을 깔아주는 것에서 지분 투자까지…즐거운 실험=비즈니스의 세계는 냉혹하다. 특히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기술력만 믿고 뛰어든 스타트업에는 더욱 냉정한 곳이 비즈니스 세계다. 아무리 아이디어나 기술이 좋아도 비즈니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

르호봇은 모든 것이 서툰 창업자들이 본격적인 생존 경쟁에 나서기에 앞서 경험을 쌓게 돕는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르호봇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비즈니스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현재 구상 단계인 '마켓 르호봇'을 통해서다.

목 대표는 "자본시장이든 실물시장이든 창업 기업들을 바로 연결시켜주는 것은 쉽지 않다"며 "입주사들이 본격적인 시장 경쟁에 뛰어들기에 앞서 르호봇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들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테스트하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목 대표는 36개의 비즈니스 센터, 1,600개의 입주 기업, 3,500여개의 멤버십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마켓 르호봇이 창업 기업들의 시장 진출을 위한 전초 기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르호봇은 지난해 인큐베이터로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입주 기업들과 르호봇의 상생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입주사들에 대한 지분 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그 첫 사례가 바로 태그솔루션이다. 르호봇은 지난해 1월 여의도 비즈니스 센터에 있던 태그솔루션을 공덕역 프라임 비즈니스 센터로 옮기고 지분(40%) 투자를 했다. 태그솔루션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르호봇의 창업 노하우를 전부 쏟아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목 대표는 "같은 공간에서 매일 매일 면대면으로 접촉하면서 태그솔루션이 가진 기술력과 인품을 확인했기에 지분 투자를 결정했다"며 "자금 지원은 태그솔루션뿐만 아니라 르호봇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르호봇은 앞으로 이 같은 실험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신규로 문을 여는 비즈니스 센터의 절반 정도는 가능성 있는 기업들에 열어주고 이들을 테스트해 10% 내외로 지분 투자까지 하는 립스(RIBS, Rehoboth Incubating Bridges)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이다.

◇르호봇과는 또 다른 모델… 패스트파이브=르호봇처럼 직접적으로 인큐베이팅을 강조하진 않지만 창업자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을 제공해 간접적으로 인큐베이팅을 돕는 업체도 있다. 미국의 공간 비즈니스 업체인 '위 워크(WeWork)'를 롤모델로 삼아 설립된 '패스트파이브'다. 르호봇이 창업의 A부터 Z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가정교사 스타일이라면 패스트파이브는 그 반대다. 창업 기업들의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기본적인 서비스는 제공하지만 패스트파이브가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창의성을 자극하는 공간과 입주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대일 패스트파이브 공동대표는 "매력적인 인테리어를 통해 창의적이고 일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자 고민을 많이 했다"며 "특색 있는 공간이 우리의 차별화 포인트"라고 말했다. 실제로 패스트파이브를 가보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천장이 높은 빌딩인데 여기에 천장까지 뜯은 지라 수직적 개방감이 상당하다. 실제로 높은 천장은 창의성을 자극한다.

대기업의 사내 벤처들도 이 같은 공간을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 SK텔레콤의 한 사내 벤처 기업은 SK 사옥이 아닌 서초동에 위치한 패스트파이브 1호점에 입주하기도 했다. 또 다른 대기업 계열의 사내 벤처들도 패스트파이브 입주를 검토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들이 패스트파이브를 찾는 이유에 대해 딱딱한 분위기의 대기업 사업과 달리 패스트파이브는 트렌디하고 개방적인 공간을 통해 창의성을 자극하는데다 다른 입주 회사들과 교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병기·조권형기자 staytomorro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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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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