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가족 밥상


펄떡이는 생선을 잡아 튀기고 돌아서서 닭을 잡는다. 갖가지 채소와 양념을 뒤섞어 쉴 새 없이 돌리는 웍(鍋·중국냄비)이 쏟아내는 요리들. 아름답다 또는 화려하다는 말을 무색하게 하는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것도, 경사가 나 잔치를 여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사랑하는 세 딸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마련한 아버지의 정성이었다. 1995년 개봉한 홍콩 영화 '음식남녀'의 첫 10여분은 지금도 많은 영화 팬들이 하이라이트로 꼽는 명장면이다. 미각을 잃었음에도 가족과의 한 끼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진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가족에게 '밥상'이란 단순히 식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생존에 가장 중요한 먹는 문제를 함께 해결함으로써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한자리에 모여 부모와 자식이 정을 나누고 소통하는 마당이 밥상이다. 여기서 세대 단절은 사라지고 화합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혼술'을 마시며 '혼밥'으로 한 끼 때우는 요즘 세대에게는 어쩌면 잊혀 가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식사 때만 되면 모든 가족이 모이는 케이블방송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요즘 최고의 주가를 누리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보듬고 형이 동생을 어루만지며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려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열렬히 '응답'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다르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거부하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4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지 않는 비율이 35.1%에 달했다. 3명 중 1명은 혼자 또는 다른 사람과 저녁을 함께 지낸다. 9년 전과 비교하면 10%포인트 이상 올라갔다. 하기야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사회생활에 휩쓸리다 보면 한 끼 식사나마 오손도손 나누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온 가족이 밥상을 빙 둘러싸고 저녁을 먹는 것도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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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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