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 칼럼] 1974~2016, 세 개의 연설… 박정희·박근혜·오바마

소통의 장치인 美 대통령 연설… 韓 '정치권 심판해야' 갈등 유발

교훈 주는 42년 전 위기타개책… 인식 공유·소통 노력이 해법


비슷하고도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보며 세 가지 공통점이 머리를 스쳤다. 거의 같은 시간대·대통령의 신년 연설…, 그리고 안타까움. 두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절실한 감정이 묻어났다. 물론 두 분은 다른 주제에 방점을 찍었다. 박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 위기상황에, 오바마는 총기 규제에. 강조점은 달랐어도 두 대통령은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전달의 방식과 체감도에서는 한참 차이가 났다. 좋게 보면 이성과 감성의 차이라고 할까. 오바마는 총기 남용으로 사람들이 죽어간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눈물뿐 아니다.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에는 감성을 자극하는 무수한 장치가 숨어 있었다. 백악관은 강당에 시민들을 초청해 분위기를 띄우고 대통령의 연설이 행해진 의회 의사당에서는 환호와 박수·웃음소리까지 간간이 들렸다. 생동감이 넘쳤다.

박 대통령 역시 지향점은 오바마와 같았으리라. 국민에 대한 호소. 하지만 전달 방식은 달랐다. 국민이 몹쓸 정치권을 심판해달라는 주문 아래 축제 분위기는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다. 감동이나 소통은? 더욱 없었다. 대통령 스스로 '질문 많이 해도 제가 머리가 좋아 기억하죠'라고 말한 대목도 기자회견장에서는 웃음을 자아냈으나 사전 각본설에 휘말렸다. 외신기자 몇몇은 트위터에 이를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보다 큰 문제는 구체적인 방향 제시가 없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 다음날 아침 조간신문들의 사설에서도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하나같이 구체적 실행 방안이 방향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연설이 떠오른다. 박 대통령의 부친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1974년 새해 첫 연설!

꼭 42년 전인 그해 초 고 박 대통령은 '긴급조치 3호'의 형식을 빌어 '1·14 경제안정화조치'를 국민들에게 직접 발표했다. 내용은 파격이었다. 저소득층 생활 안정을 위한 감세와 △고소득층의 재산 탈루 행위 및 사치 물품에 대한 중과세 △근로조건 개선 △가격안정과 부당이득세 신설 △예산 절감 등의 방안에 국민들은 박수를 쳤다. 기업들도 기꺼이 협조했다. 80%가 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감내하고도 투자에 나섰다.

고 박 대통령의 구체적이고 강력한 경제 정책에는 현실에 대한 냉엄한 인식이 있었다. 1973년 10월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 직후 아랍 산유국들이 뭉쳐 석유자원을 무기화하며 국제유가가 불과 석 달 새 4배나 치솟던 상황. 국내 물가가 뛰고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발동된 '긴급조치 3호'는 뚜렷한 약효를 냈다.

한국은 세계적인 경기 후퇴에도 수출증가율 38.3%를 기록하며 위기에서 벗어나는 발판을 다졌다. 예전과 같은 현실인식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가. 목소리만 높았을 뿐 가계부채 심화와 수출 감소, 성장률 후퇴라는 낙제점을 기록한 경제 관료가 '잘했다'며 선거판에 뛰어드는 행태를 보자니 그런 것 같지 않다.

1974년은 의미가 깊은 해다. 경제 위기의 와중에 8·15 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조총련이 보낸 간첩 문세광의 흉탄에 맞아 숨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정치적으로도 격변의 시대를 보냈다. 유신헌법을 비판만 해도 잡아가는 초법적 '긴급조치 1·2'호가 신년 벽두를 때린 게 1974년이다.

혹자는 당시와 버금가는 강력한 지도력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질서와 법 체계를 부인하는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과거를 보는 게 과민할 탓일까. 무수히 강조한 '국민'에서 '국민 총화'가, '안보와 경제가 위험 상황'이라는 강조점에서는 '올해가 가장 위험한 해'가 오버랩된다. 42년의 세월을 넘어 복잡다단해진 2016년 상황은 해법도 예전처럼 간단하지 않으리라.

대통령은 외롭고 힘든 자리다. 박 대통령이 국내 현안을 정치권 탓으로 돌리며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한 대목에서 '대통령 못해 먹겠다'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 언어의 품격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고뇌는 비슷했을 것이다. 고뇌를 푸는 길은 냉철한 인식과 소통에 있다. 42년 세월과 태평양이라는 공간 속에 담긴 세 개의 연설이 보여주는 답도 그렇다. 대통령과 정치권에 바란다. 대승적 견지에서 인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려 노력하는 한 해를 맞이하시기를.

/권홍우 논설실장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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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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