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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퍼들이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이라는 거, 옛말 같아요. 날씨가 조금만 안 좋으면 예약 취소가 이어집니다." 최근 경기 용인의 한 골프장 대표가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그 많던 열혈 골퍼들은 어디로 갔을까. 요즘 골프장은 일기예보에 울고 웃는다. 시간대별 기온까지 정교하게 알려주는 기상청 슈퍼컴퓨터와 골프 부킹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덕분(?)에 골퍼들은 손쉽게 예약을 취소할 수 있다. 히터가 빵빵하게 작동하는 스크린골프는 24시간 골퍼들에게 손짓을 보낸다. 골프장 부킹이 어렵던 몇 년 전만 해도 골퍼들은 추우나 눈이 오나 동반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기어코 골프장에 모였다.
19일 경기 파주의 서원밸리GC는 동장군과 맞선 골퍼들의 열정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이 마련한 엄동설한 라운드 이벤트 '제1회 윈터락(Winter樂) 골프'의 현장. 좋은 날씨에서만 즐기는 게 아니라 자연을 극복하는 스포츠라는 골프 본연의 정신을 일깨우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영하 15도의 올 최강 한파에 때때로 칼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이보다 훨씬 낮았지만 30여명의 참가자들은 겨울 골프만의 묘미를 즐겼다. 한 참가자의 볼이 얼어붙은 워터해저드로 향했다가 튀어나와 그린에 올라가자 환호와 탄성이 엇갈렸다. 반대로 그린에 떨어진 볼이 그린을 넘어가 타수를 손해 보는 일도 일쑤였다. 손바닥이 그립에 쩍 달라붙는 느낌이 들 정도의 강추위에도 표정만은 밝았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골프 업계 관계자들은 골퍼들의 생기가 사그라진 최근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한 골프장 직원은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같은 비용으로 최상의 만족을 얻으려는 생각 때문에 추위나 눈비가 예보되면 예약을 취소하는 일이 과거에 비해 늘었다"고 말했다. 골프용품 업계도 겨울이 더 추워진 것은 마찬가지다. A업체의 한 관계자는 "겨울철 할인행사를 해도 반응이 시원치 않다"며 "골프클럽이 비치된 스크린골프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과 골퍼들의 고령화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서원밸리GC의 오성배 사장은 "열혈 골퍼들이 늘어나면 정체 국면을 맞는 우리나라 골프산업의 재도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참가자들은 행사 후 이 같은 염원을 담아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응답하라, 열혈 골퍼들이여!" /파주=박민영기자 my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