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마음코칭] 속도와 방향

삶의 본질은 방향성에 있어 서두르지 말고 목표 향해 매진을

언제나 요동치는 남북관계도 상리공영 위한 통일로 나아가야


등산을 하다보면 계곡으로 내려갈 때도 있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올라가는 속도일 수도 있지만 봉우리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즉 등산의 방향이다. 여러 번 백두산에 오를 기회가 있었다. 백두산 천지의 물이 갈라져 압록강으로 가면 서해로 가고 두만강 쪽으로 가면 동해로 가게 되는 것을 본다. 큰 방향의 갈림이다. 순간의 선택이 상반된 결과를 낳는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하루를 맞을 때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시작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찾아오는 생각들은 대부분 부정적일 수 있다. 또는 해결해야 할 시급한 일들이 떠올라 생각이 분주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생각을 평안·기쁨을 가질 수 있는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는 계시(revelation)의 종교라고 말하고는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인간에게 열어 보여주시는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새로운 방향성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본다. 아침에 일어나 묵상 시간을 가지는 것은 내 생각에서 벗어나고 신의 뜻을 품고 시작하기 위함이다. 백두산 천지의 물이 선택한 방향에 따라 동해와 서해로 나뉘듯이 인간은 아침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시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에게서 떠오르는 생각의 내용대로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신이 부어주는 내용과 분량을 담아내며 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신이 자신을 드러내주는 '은총'에도 방향성이 있다. 그것은 신과의 화해다. 기독교에서 신이 인간과 화해하기 위해 직접 인류의 역사 안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인간이 매일 아침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 그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신과 화해하는 것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자리에서 인간은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경험한다. 모든 사람과 화목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의 진정한 방향성이다. 삶의 성공을 빨리하려 관계를 소홀히 하거나 파괴하는 것은 삶의 근본 방향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등산을 할 때 방향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숲 속에서 헤매다가 탈진하거나 벼랑의 바위에서 낙상하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향해 구조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삶의 방향은 속도보다 중요하다. 인간이 하루하루 경험하는 것에는 쓴맛도 있고 단맛도 있고 실수로 놓쳐 후회할 때도 있고 생각 이상의 큰 성과를 낼 때도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가는 삶의 방향성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다.

남북 관계도 등산과 같다. 남북 관계에서도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김일성의 사망과 함께 통일이 금방 올 것으로 기대도 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의 만남을 보면서 다소 불안함도 있었고 정말 통일이 되려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최근에는 4차 핵실험이 있었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다고 보도된다. 남북 관계는 늘 요동친다. 중요한 것은 통일이 되는 속도보다 통일의 방향이다. 남북통일은 남과 북뿐 아니라 세계 국가를 이롭게 하는 상리공영(相利共榮)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북 관계나 인간의 매일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나 속도보다 바른 방향을 가지고 가는 것이 소중해 보인다.

/하충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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