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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한 달도 안 돼 경기부양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유 경제부총리의 취임 일성은 '구조개혁 매진'이었지만 정치권의 발목잡기에 추진 동력이 약화된데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부총리의 경기인식도 내정자 신분과 취임 초기 "추경을 안 해도 올해 3.1% 성장이 가능하다"에서 "경기 회복 모멘텀이 사라지지 않도록 단기 경기부양 방안을 마련하겠다"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향후 경기 전망이 불확실하다. 미국과 중국, 주요2개국(G2) 리스크에다 유럽에 이어 일본도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열며 환율전쟁에 뛰어들었다. 엔저 가속화로 가뜩이나 어려운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당장 유일호 경제팀의 가장 큰 걱정은 내수다. 지난해 사용한 각종 부양 카드가 소진되면서 1·4분기부터 소비절벽이 닥쳐 내수 불씨마저 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4·4분기에 이어 올해 1·4분기에도 0%대 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유 부총리는 취임 이후 처음 주재한 지난 18일 확대간부회의에서 '1·4분기 경기보완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8일 공개적으로 경기부양 의사를 밝히기 이전부터 내부에서는 준비가 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마땅히 꺼낼 카드가 없는 가운데서도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설 연휴 직전 재정과 미시 대책을 결합한 미니 부양책을 마련하고 연휴 직후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통해 수출 경쟁력 방안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유일호 경제팀이 꺼낸 첫 번째 카드는 재정 조기 집행이다. 이미 1·4분기에 지난해보다 8조원을 늘린 125조원을 투입하는 데서 더 나아가 4조원+α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1·4분기 조기 집행액은 129조원+α, 조기 집행률도 당초 29.2%에서 30%선에 육박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재정의 조기 집행률을 더 높일 수 있는 여력은 개선된 세수 여건이 밑바탕이 됐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에서만 계획 대비 2조원가량 더 걷혔다. 올해 1·4분기에도 국세가 계획 대비 3조원 이상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다 지난해 말 부가가치세 조기환급이 완료되며 올해 1월(15일)까지 지출될 부가세수에 1조원가량 여유가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부양용 실탄으로 급하게 쓸 수 있는 세수가 어림잡아 6조원가량 마련되는 셈이다.
여기다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추가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기금의 지출금액을 20%(금융성 기금은 30%) 한도 내에서 증액해 사용할 수 있다. 기금의 총지출 규모는 늘어나지만 기금별 여유자금을 전용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채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두 번째 카드는 투자와 소비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미시 정책들이다. 아무래도 정부가 집행하는 재정은 실제 집행되기까지 시차가 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재정의 조기 집행규모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실집행률을 높이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투자와 소비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이미 개별소비세 인하 등 주요 정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선 검토되고 있는 정책은 준조세인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율을 50% 낮춰 소비와 투자 여력을 높이는 것이다. 정부는 전기료 1조원 인하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부담금 수입 비중이 산업용 54%, 일반용 24%, 주택용 15%가량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부담이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검토 중인 방안은 원천기술 및 신성장동력 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세액공제율을 중소기업은 30%에서 50%로, 중견·대기업은 20%에서 30%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다. 중소기업은 1억원을 투자하면 500만원, 중견·대기업은 30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투자요인 효과가 크다. 신성장동력에 대한 기업들의 R&D 투자를 늘려 미래 먹거리를 만들자는 복안이다. /세종=김정곤·이태규기자 mckid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