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서울, 경제]한국경제 뿌리산업, '소공인'이 위험하다

2016년 1월 29일 서울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한 공방. 알싸한 접착제 냄새가 콧속 깊게 파고든다. 작업실에 들어서니 나이 지긋한 장인이 낡고 좁은 책상 앞에서 굽은 허리를 숙여 바느질하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자리에 앉을 틈도 없이 주문량을 맞추려 동분서주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이날도 일거리가 없어 재봉틀은 채 한 시간도 돌지 못하고 조용히 숨을 멈추었다. 공기마저 탁한 작업장엔 장인의 한숨만 가득할 뿐이었다.

서울경제 썸이 현장취재에 나서 본 결과 ‘한강의 기적’ 주역 소규모 제조업자(이하 소공인)가 차츰 설 자리를 잃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곳(판교테크노밸리, 상암DMC)에는 투자가 몰리고 있지만 소공인이 밀집한 집적지에는 각종 규제 때문에 신규 투자나 사업체 확장도 불가능하다. 과거의 빛을 잃고 서울의 그림자가 돼 가는 그들의 현실은 거세게 불어오는 겨울바람만큼 차갑기만 하다.

△소공인, 서울에만 약 15만 명이나 돼



통계청의 전국사업체조사(2014년)에 따르면 서울시 전체 산업체 수는 78만5,094개로 조사됐다. 이중 소규모 제조업체 수는 전체 제조업체 수(5만8,551개)의 92.7%에 이르는 5만4,272개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적으로 봤을 때 소공인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전국적으로 소공인의 비율은 24.9%였고, 경기도(26.1%)만 보더라도 서울 제조업체들이 상당히 영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은 중소기업, 소상공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1월 25일 펴낸 ‘서울시 소규모 제조업 밀집지역 현황과 전망’에 따르면 중앙정부에서 소상공인진흥공단과 중소기업청을 통해 경영자금 지원, 협동조합 지원, 소공인특화지원센터 운영 등 다양한 지원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예산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집중되고 있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일부 혜택도 도시형 제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소공인을 상대로 한 지원 제도는 일부 소상공인 지원 대책에 포함돼 있을 뿐 실효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호(50) 서울시 중구 봉제 소공인특화지원센터장은 “지원 제도도 미미하지만 생색내기에 급급한 지원 정책들이 많다”며 “정작 소공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감이기 때문에 좀 더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물어 가는 해처럼 소공인도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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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과정에서 만나본 소공인들은 지원 대책도 필요하고, 예산도 필요하지만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들의 일을 배울 ‘젊은 소공인’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서울연구원 내부자료를 통해 서울 시내 4개 소공인 집적지의 평균연령을 조사해 발표했다. 평균연령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기계·금속가공 업체들이 모인 영등포구 문래동으로, 54.6세로 조사됐다. 전체 연령대로 보더라도 50대가 45.7%에 이를 정도로 상당한 노후화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이공계 기피현상을 줄이고 기술인력의 보강을 위해 설립한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졸업생들 또한 제조업계로 유입되지 못하면서 오랜 기간 쌓아온 제조 노하우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고(故)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자 소공인 정책 전문가인 전순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공인이 가진 잠재력과 일자리 창출 효과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평가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소공인 생태계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소공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지금까지 소공인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은 ‘땜질’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그 사이 소공인의 현실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또한 시장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 폐쇄적인 구조 또한 정부 지원 정책의 한계로 꼽을 수 있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지원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소공인들의 성장의욕은 저하됐고 한국 경제의 뿌리, 모세혈관 역할을 하고 있는 소규모 제조업의 경색을 가져왔다. 국내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들은 뿌리 경제가 다른 무엇보다 탄탄하다”며 “정부가 지금의 현실을 바로 잡지 못할 경우, 한국 경제의 순환체계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술강국인 독일의 경우를 보면 소규모 제조업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만 있으면 규모와 관계없이 제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는 독일은 소규모 제조업의 안정적인 운영을 바탕으로 산업 전반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소공인의 애로 사항을 경청해야 한다. 소공인에 대한 지원대책도 맞춤형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막혀 있는 ‘경제 혈관’을 뚫린다. 뿌리부터 썩은 나무는 넓은 그늘을 만들어 낼 수 없듯, 위기에 빠진 소공인을 살릴 수 있어야 산업 선순환 체계가 회복은 물론 진정한 창조경제의 달성이 가능하다.
phillies@sed.co.kr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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