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59> 안철수와 ‘영혼이 있는 승부’





요즘 정치처럼 재미없는 게 또 있을까 싶다. 상상력을 잃어버린 채 그때그때의 흐름에 따라 표류하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옥중에서 동서양의 고전과 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리더로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문,사,철에 기반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킹’ 말고도 ‘킹메이커’에게도 창조적 발상이 필요하다. 장자(莊子)를 좋아했던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는 원래 시인이었다. 처절한 권력 투쟁의 무대에서 교환과 거래를 위한 판을 벌이는 호기 어린 김 대표의 가슴 속에는 ‘주먹밥을 건네시는 어머니의 아픔’을 이해할 줄 아는 따뜻한 감성이 있었다. 정치는 내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상상력과 열정이 없이 누군가를 설득하고 있다면 그건 마케팅이지 정치가 아니다.


요즘 가장 안타까운 사람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안철수 의원이다. 그는 정치 무대에 데뷔하기 전 혁신적인 기업가였다. 고등학생 시절 안 의원이 안랩 대표 시절 썼던 자서전 ‘영혼이 있는 승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안정적인 의대 교수 자리를 던지고, 한 사람의 개발자이자 기획자로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시장에 뛰어든 안철수에게는 나름의 무한감성과 열정이 있었다. 육군 훈련소에 입대하는 그날까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가 훈련소에 입소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에 몰입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영혼이 있는 승부는 모든 것을 건 싸움을 의미했다. 경쟁자가 누구인가, 대적해야 할 1등 기업이 어디인가는 큰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갈망하는 것을 향한 돈키호테적인 돌진이 안철수의 삶을 바라보는 모두를 감동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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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판에 들어 온 안철수 의원은 실망스럽다. 이미 대권 창출에 실패한 그가 왜 ‘의원’ 라벨에서 맴돌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조금 회의적이다. 안 의원이 정치 생활에서 가장 멋있었던 시기는 2011년 말부터 2012년 대선 전까지 1년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가 대안세력으로서 등판하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순간이었다. 정치판이 우왕좌왕할 동안 그는 ‘새정치’를 외쳤고, 그 슬로건을 반영한 정당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혁신적인 기업인이자 오피니언 리더 안철수가 그토록 갈망한 새정치가 무엇인지 근 4년째 제대로 된 공언(公言)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새정치의 테두리에 엮어 넣을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지금 그는 야권 분열의 주인공이 되어 또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번에는 새정치라는 표현이 면구스러운지 ‘국민의당’이라는 이름을 사전적 의미가 좋다는 이유로 계승했다. 안 의원은 자신의 텃밭에서도 정말 어려운 상황이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이 내놓은 출사표가 안철수의 또 다른 정치적 위기 아니냐 하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기든 지든 ‘얻을 것 없는’ 게임이라는 게 세간의 평이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안 의원이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생각하고 국민의 당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다. 어느 철학자는 안 의원이 ‘50%에서 0%로 내려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폄하했다지만, 남은 기간 동안 ‘영혼이 있는 승부’를 보여준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본다. 나는 안 의원을 만나본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다. 다만 정파적 입장과 별개로 그가 성공한 정치인 중 하나로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안철수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가 잃어버린 상상력, 온몸을 던지는 용기를 되찾기를.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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