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시각]한미 사드협의, 체코 전철 밟지 말아야



지난 1월 체코 국방부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남서부 지역인 브르디(Brdy)일대에 260㎢에 달했던 군사지역을 대거 일반인에게 개방키로 하고 환경부에 국립공원 등의 용도로 이양한 것이다. 안보당국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뼈 아픈 결정이었을 것이다. 원래 해당 부지에는 미군이 유럽을 보호할 탄도미사일 방어막용 첨단 레이더기지를 설치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레이더는 ‘GBR-P’다. 이는 주한미군 도입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용 레이더인 AN/TPY-2의 사촌뻘 제품이다. 미국은 조지 W.부시 대통령 재임시절에 이 레이더를 체코에 두고, 인접국인 폴란드에 중간단계 탄도미사일 요격용 미사일(GBI) 기지를 배치해 이란 등의 탄도미사일로부터 유럽을 지키겠다며 2000년대 초부터 체코, 폴란드와 각각 물밑 협상을 벌여왔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이란 견제였으나 러시아는 해당 정책이 사실상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며 두 나라가 기지를 수용하면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감수해야한다고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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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공산권이던 두 국가의 반응은 어땠을까. 양국 정부 정상들은 들끓는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2008년 전격적으로 미국의 요청을 전격 수용했다. 그런데 대반전이 발생했다. 이듬해 정권교체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소위 ‘제 3지대 미사일 방어기지(The Third site)’로 불리던 체코·폴란드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란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엔 아직 멀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배경은 러시아의 반발을 무마하고, 미국의 국방예산을 절감하기 위한 결단이었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후 탄도미사일의 중간단계가 아닌 낙하단계(종말단계)에서 요격하는 SM-3미사일 및 레이더 등을 2018년까지 배치하겠다며 두 나라를 달랬으나 체코는 부시 정부의 약속보다 대폭 축소된 오바마 정부의 방어계획을 거부한 채 대안을 찾고 있다. 폴란드는 대안이 없어 오바마 정부의 축소된 절충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도발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주한미군 사드 도입에 관한 ‘공식협의’를 시작하겠다고 지난 7일 밝혔다. 비용, 사드의 요격 성능, 레이더 전자파의 인체 및 환경 영향 등의 논란 을 놓고 보면 성급한 발표라고 생각하지만 북한과 중국을 압박할 다른 카드가 없던 우리 정부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정부가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파장을 무릅쓰고 주한미군의 요청을 수용한 만큼 미국 정부도 최고의 신의를 보여줘야 한다. 체코에게 한 것처럼 대한민국을 뒷통수 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체코 때나 현재의 한국이나 여러 정황이 비슷하다. 미국 대통령선거 무렵이었다는 점, 표면상의 적국(북한, 이란)과 다른 제 3의 접경 대국(중국, 러시아)이 요격기지 배치예정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 미국 국방예산 긴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혹여나 대선 후 미국이 슬쩍 중국과 절충하게 된다면 한국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정부도 이를 감안해 일을 진행해야 한다. /민병권 차장(정보산업부) newsroom@sed.co.kr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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