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K푸드 아시안 벨트 만들자] 한일관계 악화로 日서 '식품한류' 고전… 마케팅·품질로 승부를

<5> 對日 식품수출 되살려라

정치적 갈등에 한식당·마트 한국식품 코너 손님 뚝

한류 편승한 질 낮은 제품 유입으로 신뢰마저 잃어

먹거리 체계적 관리·시식코너 늘려 日 입맛 잡아야

일본 마트
일본 신주쿠에 위치한 이토요카도 식품관 매장에서 지난해 개최돤 한국 식품 페스티벌의 시식코너가 한국 식재료로 만든 김밥을 맛보려는 일본 소비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농식품유통공사 도쿄지사

지난달 말 휴일 오후에 찾은 일본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의 쇼쿠안거리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일본 속 한국'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대로변에는 삼겹살집을 비롯한 한식당들이 한류 아이돌 상품점, 한국 화장품 매장과 뒤섞여 즐비했고 곳곳의 골목길 모퉁이에는 호떡부터 떡볶이·어묵꼬치까지 익숙한 길거리 음식점 앞에 젊은 일본 여성들이 제법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 슈퍼마켓도 라면부터 밑반찬까지 한국 음식을 사러 나온 일본 쇼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쇼쿠안거리와 나란히 나 있는 오쿠보거리에 위치한 한국 식품점인 서울시장은 3,000여가지의 한국 식품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진열대 사이로 주부들이 장바구니를 채우느라 분주하다. 한류의 침체와 함께 한동안 일본 사회에서 외면받았던 도쿄 코리아타운은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있는 듯했다. 서울시장의 현지 직원인 오쿠보 도모히사 관리차장은 "하루 평균 2,000명에 달하는 고객들의 80~90%는 일본인"이라며 "극우세력의 혐한 시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14년에는 손님의 발길이 뜸했지만 지금은 예전 매출이 회복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시장에서 한번 꺾인 한국 식품의 위상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음식 한류의 출발점이 됐던 일본에서 대부분의 한국 식품업계와 현지 한식당들은 여전히 매출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으로의 농식품 수출액은 18억3,000만달러(약 2조2,000억원) 남짓으로 전년 대비 12%가량 줄었다.

한류 열풍과 함께 "한글만 붙어 있으면 없어서 못 팔았다"던 일본 시장에서의 한식 인기가 급격하게 위축된 데는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2012년의 독도 갈등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우익세력이 혐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한국 식품은 일본 슈퍼마켓의 진열대에서 밀려나기 시작했고 북새통을 이루던 한식당에는 손님의 발길의 뜸해졌다. 진로재팬에 따르면 일본의 한국산 막걸리 수입은 현재 현지 막걸리 열풍이 한창이던 2011년의 4분의1 수준으로 곤두박질친 상태다. 김영진 재일한국농식품연합체 회장은 "1997년부터 일본에서 식품 사업을 하고 있지만 지난 수년 동안만큼 어려웠던 적이 없다"며 "각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연합회 회원사들의 전반적인 매출이 한류 붐이 한창일 때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서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한다. 문을 닫거나 개업을 미룬 한식당도 적지 않다. 일본에서 '처가방' 등 40여개에 달하는 한식당 네트워크를 운영해온 오영석 대표는 "45개 식당 가운데 9개의 문을 닫았다"며 "한국 식당이 문을 닫으면 그 자리에 중국과 베트남·태국 레스토랑이 들어선다"고 말했다.

물론 정치적 관계가 나빠졌다고 소비자들이 하루아침에 한국 식품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역사문제를 둘러싼 양국 관계의 경색이 일본 시장에서 모처럼 고조됐던 한국 식품 진출 기회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박영생 농심재팬 마케팅부장은 "2012년 하반기 이후 일본 유통매장에 일본 우익이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판촉행사를 거의 못했다"며 "공산품과 달리 한국색이 강한 식품은 정치관계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 문제에 가려진 한국 식품의 과제는 따로 있다.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까다롭고 선진화된 일본 시장에서 한국 농식품이 정착할 수 있을 만한 체계적인 품질관리와 시장 분석, 마케팅 노력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홍봉 진로재팬 상무는 "2011년을 전후해 일본 내 막걸리 판매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품질이 낮은 제품들까지 우후죽순으로 유입돼 시장의 신뢰를 잃은 면이 있다"며 "맛의 균질화를 이룰 수 있는 기술력과 일본 시장에 대한 장기적 관점의 연구, 마케팅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일본에서 한국 농식품은 '한인 커뮤니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 관한 것이라면 무조건 날개 돋친 듯 팔렸던 한류 붐이 장기적인 일본시장 개척에는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제품 고급화를 위한 공인된 등급 지정과 유통기한의 한계 극복을 위한 노력 등 한식을 문화상품화하기 위한 노력 없이는 글로벌화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현지 관계자들은 그러나 일본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일본이 '어려운 시장'임은 분명하지만 한국 먹거리가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가능성은 이미 확인된 상태라는 것이다. 일본 대형 유통업체인 이토요카도의 나카무라 준 판매본부 머천다이저는 "매장에서 전개하는 각국 전통식품(에스닉푸드) 판촉행사에서 한국 식품은 꽤 인기가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지리적 근접성 덕에 이미 한식을 접해본 경험이 있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고 한국 식품은 일본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건강' 코드에 잘 맞아떨어진다는 이점이 있다. 최근 일본 시장에서 판매가 급증한 들기름도 TV 프로그램에서 '치매에 좋다'는 효능이 소개되면서 소비 붐이 일어난 경우다. 대일(對日) 들기름 수출액은 2014년 연간 11만5,000달러에서 지난해 1,286만달러로 1만% 이상 폭증했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일본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려면 다양한 한국 식품을 '체험'할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오쿠보 차장은 "한국의 시장 콘셉트에 따라 시식코너를 충실하게 운영한 것이 매출향상으로 직결됐다"며 "일본 소비자들을 상대하는 데는 직접 음식을 먹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고"라고 말했다. /도쿄=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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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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