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개성공단 가동 중단] '봉쇄 속 협력' 모순 끝에 개성공단 13년 만에 사실상 폐쇄

남북경협 상징 '영욕의 세월'

"흔들리는 배 위에 지은 집" 정치적 이슈 때마다 휘청

"상주 인력 北 인질될 우려" 공단 자체 반대 목소리도

개성공단 전면폐쇄4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과 관련한 정부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개성공업지구는 남북 경제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상징으로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국내외 정치 변수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근원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간 수많은 갈등을 겪었고 이번에 끝내 사실상 폐쇄 단계까지 가게 됐다.

개성공단은 한국의 자본과 기술에 북측의 노동력을 결합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난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공업지구 건설에 합의하면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현대아산이 북한으로부터 50년간 토지를 임차해 공단을 건설하고 이를 국내외 기업에 분양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2003년 6월 1단계 착공식이 열린 데 이어 이듬해 12월에는 조리기구 업체 리빙아트가 첫 번째 시제품을 만들었고 이후 의류업체 신원, 속옷업체 좋은사람들 등 경공업 업체들이 공장을 완성하면서 2006년 완전 가동에 들어갔다.

이처럼 한국은 중국 등으로 빠져나가는 노동집약적 산업을 개성으로 돌려 경쟁력을 높이고 북한은 노동력 공급을 통해 경제발전의 단초를 마련한다는 게 개성공단의 이상이었다. 더 나아가 개성공단을 남북 교류협력의 토대로 삼는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 경제봉쇄 조치와 개성공단 협력사업이 배치한다는 근본적 모순은 해결할 수가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결의에 찬성하면서도 대북 교역활동을 하는 것처럼 한국도 이 같은 모순 속에서 균형점을 찾아야만 했다.

바로 이 때문에 남북의 정치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개성공단이 흔들렸다.

2008년 3월에는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가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선제 타격' 발언을 문제 삼아 북한이 개성공단 내 한국 공무원 11명의 철수를 요구했다.

2009년 5월에는 북한은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가 북한 종업원 탈북을 시도했다면서 한국 기업들에 대한 특혜 무효화를 선언하고 유씨를 억류하기도 했다.

2010년 3월에는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5·24조치가 나왔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 투자가 금지되고 공단 체류인원이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 때문에 입주기업들이 계약 취소, 납품 지연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해 11월에는 연평도 포격사건 영향으로 개성공단 출입이 잠시 차단되기도 했다. 2013년에는 연초에 있었던 북한 핵실험에 대해 남한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자 4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출입을 제한시켰고 한국은 근로자 전원 철수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개성공단이 160여일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익명의 한 사립대 교수는 "남북 관계가 이대로 간다면 개성공단은 흔들리는 배 위에 지은 집과 같다"면서 "경제가 정치를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개성공단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개성공단 자체에 반대하는 보수층 일각의 목소리도 높다. 가장 대표적인 반대 논리가 '인질론'과 '달러박스론'이다. 인질론은 갑작스러운 남북 갈등 국면에서 개성공단 상주 인력이 북한의 인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달러박스론은 북한이 개성공단을 통해 번 외화를 독재정권의 통치자금이나 핵 등 무기개발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날 정부가 밝힌 전면 가동중단 이유 중 하나도 개성공단 가동이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 전용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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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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