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그림자로 그린 수묵화… 변종 좇는 시대상 꼬집다

■ 미디어 아티스트 이예승 개인전

전선·조명·카메라·기계장비 이용… 수묵의 번짐 표현하는 동양화 기법

빛의 밝기 조절해 설치작으로 재현

04_목재, 키네틱, 모터, 웹캠, 가변설치, 2016년
이예승의 설치작품 '목재' /사진제공=아트사이드갤러리

하얀 벽에 걸린 검은 색 모니터에서 별을 품은 밤하늘이 펼쳐진다. 화면을 꽉 채운 새까만 밤 풍경은 지구의 자전 속도 만큼이나 느릿하게 움직인다. 잠시 고향 하늘의 향수에 젖어들었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속았다. 바로 옆 설치작품에서 장치된 카메가 실시간으로 수묵화를 찍어 보여준 영상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미디어 아티스트 이예승(42)은 커다란 종이 위에 일획(一劃)으로 굵은 먹선을 그렸다. 이 그림을 원통형으로 말아서 걸고 모터가 달린 근접 카메라가 서서히 움직이며 먹선을 보여주게 했다. 별(星)인 줄 알았던 것은 실상 종이 구멍이거나 먹의 빈 자리였다. 이 '목재'라는 작품의 전체적 형태는 과학시간에 보던 알콜램프와 삼발이 같다. 다리가 6개인 원형 나무탁자의 가운데를 둥글게 파 모터와 장비를 설치하고 그 위에 원통형 수묵화를 올린 구조다. 기능적으로는 3~4개면 충분할 책상다리가 6개인 것이나, 안이 훤히 보이는 기계장비들이나, 그것이 보여주는 밤하늘 같은 낭만적인 풍경은 참으로 기묘하다. 작가는 "각기 채집한 기능별로 사물을 결합한 변종이자 변용인데, 이것이 곧 우리 시대의 현실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와 이종교합을 좇는 시대상이 뜨끔할 소리다.

이예승의 개인전 '동중동·정중동(動中動 靜中動)'이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3월3일까지 열린다.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움직임이 있고, 조용히 있는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다는 전시제목처럼 작품마다 미묘한 움직임을 갖는 게 특징이다. 침대맡 조명등을 생각나게 하는 대형 설치작품은 벽면에 거대한 레이스 형태 그림자를 흘려 보낸다. 다소곳한 그림자의 속도와 문양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를 움직이게 하는 기계장비와 전선들이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동양화를 그리던 필선이 설치작품의 전선으로 바뀌었다"는 작가는 "먹의 농도를 조절해 수묵의 겹침과 번짐을 표현하는 동양화 기법을 빛의 밝기를 조절해 명암이 다른 그림자로 재현하는 현대적 설치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이 예술작품이 보여주는 환영이고 가상이라면 이것을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전선과 기계구조는 현실이고 실상이다. 이게 미술작품이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이었다면 전선을 숨긴 채 매끈한 레이스와 그림자만 보여줬을테다. 하지만 시대를 고찰한 '미술 작품'은 이를 뒤집어 보여준다. 난해하다고 할 지 모르지만 그것이 현대미술이다.

작가는 고대 그리스신화 못지않게 오래된 동양의 고전 '산해경(山海經)'의 영향을 받았다. 반인반수(半人半獸) 같은 기괴한 사람과 해괴한 동식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과 편견없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점에서 현대인이 되새겨봐야 할 주제를 발견한 모양이다. '산해경'의 장면을 반영하고 또 현대적 픽셀이미지로 재해석한 영상들이 넋 빼는 볼거리다. (02)7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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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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