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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가치 하락" 우려 확산
편법 동원 재산 빼돌려기 기승
처분 기법, 형식상 합법 테두리
당국, 대처 방안 마련에 골머리
중국 상하이 금융시장에서 일하는 해리 후씨는 지난해 말 자신과 아내·부모의 통장을 모두 동원해 미화 20만달러를 사들였다. 그의 달러 사재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새해가 시작되자 또다시 중국 상업은행의 온라인계좌를 통해 달러를 사들이며 개인의 연간 달러화 환전 한도를 곧바로 채워버렸다.
그가 이렇게 달러화 사재기에 나선 것은 위안화 가치가 올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후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올해 주식시장의 위험도 크겠지만 가장 큰 위험은 위안화 절하"라며 "중국 정부는 지난 1990년대에 위안화 가치를 달러화 대비 5위안에서 8위안까지 떨어지게 방치한 적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중국 부자들이 달러 사재기에 그치지 않고 각종 편법을 동원해 달러 뭉칫돈 해외 빼돌리기에 나서면서 중국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는 13일(현지시간) 중국 갑부들이 친구와 친척들을 동원해 1인당 연간 달러 환전 한도인 5만달러(약 6,000만원)씩 해외송금을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식으로 위안화 재산을 대거 처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일반적인 기법은 만화영화 캐릭터 스머프에서 따온 '스머핑(smurfing)'이다. 가족은 물론 친척과 친구를 동원하거나 지인들의 이름으로 분산해 자신의 재산을 달러화 자산으로 바꿔 편법 송금하는 방식이다. INYT는 상하이의 한 여성 자산가가 친구와 친구의 친척 등 140명을 동원해 700만달러(약 85억원) 상당의 위안화를 달러 자산으로 바꾼 사례까지 나타났다고 전했다.
일부 간 큰 중국인들은 세관당국의 느슨한 검문을 이용해 허용범위를 넘어선 거액의 달러화를 들고 출국하기까지 한다. 지난해 중국 관세청은 지폐 25만달러를 온몸 구석구석에 감추고 출국하려던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다.
편법만 동원하는 게 아니다. 일부 기업가들은 해외 사업체를 사거나 달러 채무를 갚는 방식, 또는 해외 청구서 내용을 부풀려 자산을 외국에 모으는 방법으로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다. 이 같은 방법은 형식상 합법 테두리 안에 있기 때문에 중국 당국으로서는 편법재산 빼돌리기를 단속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당국은 스머핑 경로를 차단하는가 하면 청구서 내용을 부풀려 해외에 자산을 쌓는 기업들을 단속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다. 급격한 자본유출을 걱정해 뒤늦게 친척이나 친지 명의로 달러화를 사들이는 움직임 등에 관한 감독과 조사를 강화하는 한편 시중은행에 타인에게 자신의 달러 매입 한도를 증여하는 이들을 특별 관리하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자산의 15%를 해외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보험업의 해외사업을 중단시켰다. 이와 함께 신용카드로 해외 보험상품을 구매할 경우 5,000달러를 넘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두는 조치도 시행했다. 중국 자산가들이 홍콩에 위치한 해외 보험상품을 이용해 뭉칫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INYT는 추가 위안화 가치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중국 부호들의 달러화 사재기와 자금 해외유출 백태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홍콩에서 근무하는 자산 매니저 로널드 완은 "내가 알고 있는 중국 기업인들의 대부분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릴 생각을 갖고 있다"며 "위안화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중국 자산가들에게 일반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