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TRS-KIKO-ELS 데자뷔-신성환 금융연구원장


1997년 여름 아시아 외환위기와 함께 태국 밧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우리나라 원화 등 아시아 국가의 통화가치가 곤두박질쳤다. 이 같은 사태의 배경에는 차입조건에 수반된 총수익스와프(TRS) 파생계약이 있었다. 국내 금융회사가 달러 차입금리를 낮추기 위해 '설마'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던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환율에 연동된 파생계약 폭탄이 이들 통화의 급격한 절하로 인해 터져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10년 후 2007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유사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 희생양은 금융회사가 아니라 중소기업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구조의 파생계약이 중소기업의 환헤지 거래에 수반되면서 또 폭발해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파생계약이 원화환율에 연동됐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2007년 초까지만 해도 경제전문가들은 대부분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원화의 지속적 강세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때 국내 중소기업들은 이런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수출로부터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달러 자금을 원화로 전환하고자 선물환계약을 맺었고 전환 조건을 약간 유리하게 만들려고 원화환율에 연동된 키코(KIKO) 파생계약을 또다시 '설마'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2008년 중반부터 원화는 급격하게 평가절하됐고 유수의 중소기업들이 자기자본을 완전 잠식당하는 수준의 엄청난 평가손실을 입었다.

이로부터 9년 후인 2016년 비슷한 사건이 다시 한 번 발생하고 있다. 이번에도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홍콩 H지수에 연동된 파생계약이 수반된 주가연계증권(ELS)을 매입했다. 그러나 중국 경제 불안과 함께 홍콩 증시가 폭락하며 3조3,000억원에 달하는 ELS 투자금이 원금 손실 위험에 놓이게 됐다. 다행히 아직 이 상품의 대부분이 만기 도래 전이어서 아직은 손실 본 것은 아니고 회복의 기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마치 1만원을 주고 산 주식 가격이 5,000원으로 하락한 시점에서 오를 때까지 기다리면 되니까 아직 손해 본 것은 아니라는 억지 기대 같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10년마다 비슷한 사고가 피해대상만 바뀌며 발생하고 있다. 물론 홍콩 H지수가 다시 반등해 아무런 피해 없이 ELS 투자가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과거 두 번씩이나 경험했던 파생계약이 무늬만 바뀐 채 국내 개인들에게 대규모로 판매된 점은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폭발성 있는 파생계약이 대규모로 개인에게 판매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도 어렵다. 이번 ELS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간에 이 사건을 교훈 삼아 앞으로는 불특정 다수의 개인에게 고위험 파생계약이 판매되는 일은 금융소비자보호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 감독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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