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Hot 이슈] 국내기업은 수주할 생각 마라?… 외국업체만 기회주는 승강기 규제

■대통령 지시 비웃듯 기업 발목잡는 규제

100층 이상 시공경험 기업에 가점

현대엘리, 초고층 입찰 꿈도 못꿔

참여업체에 자국 부품 쓰라면서 국내기업엔 유럽산 사용 강요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7일 기획재정부 등 경제 관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내야만 할 규제만 살리겠다”며 다시 한 번 규제 철폐의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거듭된 지시를 비웃듯, 일선 현장의 모습은 전혀 바뀌지 않거나 도리어 역행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승강기 사업의 규제를 둘러싼 최근의 충돌 모습은 작지만, 현장에서의 왜곡된 규제 실태가 얼마나 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심지어 외국계 기업에만 사업 기회를 주는 비상식적인 규제, 중국 저질 부품을 사용해도 제재하지 않는 허술한 시스템이 버젓이 살아 있다. 국내 업계에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오히려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비정상적인 규제를 풀어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최근 부산시가 주도하는 ‘엘시티(해운대관광리조트)’의 엘리베이터 입찰전에서 일본 미쓰비시, 미국 오티스, 독일 티센크루프 등 외국계 엘리베이터 업체와 경쟁하고 있다. 엘시티는 101층의 초고층 건물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최초로 ‘복층 엘리베이터’를 서울 용산의 LG유플러스 신사옥에 도입하고 터키·아랍에미리트(UAE)에서 사업을 수주하는 등 국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왔다. 역시 국내 최초로 분당 1,080m의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개발해 경기도 이천 공장의 250m 높이 테스트 타워에서 수년간 시험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입찰전만은 “장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기술적으로 특별한 사유도 없이 노골적으로 외국계 업체를 우대하는 입찰 규정 때문이다.

규정을 보면 우선 100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시공한 경험이 있는 업체가 가점을 받도록 돼 있다. 국내에 100층 이상의 건물 자체가 드물어 시공 경험이 없는 현대엘리베이터는 앞서도 비슷한 제한 때문에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123층) 사업에 입찰도 못 했다. 이미 기술력은 갖췄는데 정작 국내에서 차별을 받는 셈이다.


이상한 규제는 더 있다. 입찰 규정에는 각 참여 업체들이 본국의 부품을 사용하도록 명시해놓았지만 유독 현대엘리베이터만 유럽 부품을 쓰도록 했다. 미쓰비시와 티센크루프는 자사에 익숙한 일본·독일 부품을 사용하면 되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평소 쓰던 국산이 아닌 낯선 유럽산으로 엘리베이터를 만들라는 것이다. 부산시와 국내 기업들이 함께 짓는 건물인데도 ‘국산은 불안하다’는 편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은 아예 수주할 생각 말라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김병효 현대엘리베이터 전무가 4일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열린 3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에서 이와 관련해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건의를 전달하기도 했다.

승강기 업계의 규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의 2층 주택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호화주택으로 분류돼 취득세가 대폭 늘어난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에도 저층 주택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제한하는 것이다. 주택 내 엘리베이터가 꼭 필요한 장애인에게도 불합리한 규제다.

국내 기업과 경쟁하는 중국산 에스컬레이터에 대해서도 업계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 설치되는 에스컬레이터 대부분은 중국산이다.

장주성 한국엘리베이터협회 전무는 “중국 기업이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으로부터 에스컬레이터 부품을 한 번 인증받은 후에는 아무런 추가 검사가 없다”며 “업체가 인증받은 것과 다른 저품질 부품을 들여와도 누구도 제재하지 않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한국엘리베이터협회의 49개 회원사 경영진은 17일 여의도 켄싱턴호텔에 모여 승강기산업진흥법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을 육성해야 할 정부·지자체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며 “전략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해달라”고 호소했다.

유주희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