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참을 수 없는 예술의 가벼움

지상으로 내려와야 할 천상의 거장들

모호한 수사 뒤에 숨은 두 거장의 대처 아쉬워

데스크 칼럼

이병관 문화레저부장




참을 수 없는 예술의 가벼움

지상으로 내려와야 할 ‘천상의 거장들’

또 터졌다. 그동안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 작품 12점이 모두 가짜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 전 서울시향 감독이 부인 구모씨의 박현정 전 시향 대표 성추행 조작설이 보도되면서 감독직을 사퇴하고 바로 다음날 프랑스로 건너간지 두달이 채 되지 않았다. 모두 남다른 열정과 재능으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다.


지난 10년 사이 이 화백은 국내외 경매 낙찰 총액만 700억원이 넘고 정 마에스트로는 서울시향을 아시아 최고의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올려놓았다. 한국미술과 음악을 선도한 양대 거장이고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애호가와 팬들이 많기에 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다. 두 사건 모두 경찰 수사가 진행중이기에 이씨가 위작에 얼마나 간여했는지, 정씨가 성추행 사건에 개입돼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여기서 형사적 책임 여부를 따지자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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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이들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적지않은 실망감을 안겨다주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그것도 한국 예술계의 한 획을 긋는 거장들이기에 그분들의 언행 하나하나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거나 모호한 말로 책임 회피에 전전하는 모습이다. 이 화백은 위작 시비 초기에는 “내 작품은 위조 못한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일련 번호가 같은 작품도 나오자 “위조 검증을 요구받아 선의로 봐준 것이다. 도쿄 등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다 보니 일련 번호가 겹쳤을 수 있다”며 모호한 말로 바꿨다. 되레 자신이 피해자라며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는 식이다.

정 지휘자는 실체적 진실은 아랑곳 않고 장엄한 말만 남기고 떠났다. 지난해말 사퇴의 변에서 “어느 나라에서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야만같은 일이 일어났다. 인간의 고귀함과 진실은 종국에 승리할 것이다. 음악은 영혼의 매개체로 국가와 종교, 이념과 사상을 넘어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라는 장엄한 말로 치장했다.

정씨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예술은 현실과 유리돼 저 하늘 높은 곳에서 고고하게 탄생하는 게 아니다. 시향 성추행사태보다 훨씬 더 극악하고 비인간적인 사태와 사회 부조리 속에서 고민하며 성찰하는 과정에서 고통스럽게 창조되는 것이다. 우리가 정씨가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의 바다에 빠지는 것은 그 예술작품을 연주하고 지휘하는 선장의 영혼과 인간성과 고뇌의 아름다움을 믿기 때문이다. 예술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물이 아니라 그 예술품을 만든 사람의 철학과 내면에서 나오는 그 무엇이다. 모짜르트는 당시 왕정 귀족의 신분질서에 반기를 들면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만들었다. 베토벤이나 말러의 음악에 격렬한 고통과 심각한 착란이 뒤섞여 있지 않은가.

‘음악밖에 모르는’ 천상의 지휘자가 아니라 고통스런 지상으로 내려와 사회를 끌어안는 음악가가 돼야 한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독일 추상미술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자신 작품중에서도 미진할 경우 아예 일련 번호를 매기지 않고 본인 작품 표시만 한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작품의 경우는 일련 번호를 꼼꼼히 적는 도록 장부를 필수적으로 갖고있다.

예술을 뜻하는 art는 사실 산업혁명 시기인 18세기 전까지만 해도 손재주 좋은 기술을 의미했다. 왕과 귀족에게 맞춤형으로 만드는 기교있는 제품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등장으로 인간의 주체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art는 단순한 재주가 아닌 그것을 만든, 즉 예술가의 영혼과 인간성 등 내면으로부터 나온 예술품의 개념으로 진화했고 이른바 미술(fine art)이 등장했다. 본래 fine art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 시 등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용어였다.

예(禮) 악(樂) 서(書) 등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예술도 기초 교양의 씨를 뿌리고 인격의 꽃을 피우는 수단으로 예술을 인식했다. 예술은 고통과 번민이 따르지만 위선과 협잡, 기회주의가 판치는 현실세계처럼 똑같이 진흙탕이 돼서는 안된다. 두 분 거장은 단순한 일개 범부가 아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밝히고 우리 시대의 거물 예술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yhlee@sed.co.kr

이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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