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책임경영' 굵은 선 드러내는 이재용… 사업재편 더 빨라진다

■ 순환출자 강화 고리 끊은 삼성

SDS 지분 매각대금 대부분 삼성물산 지분 매입에 사용

'선택과 집중' 리더십 보여줘… SDS 지분 추가매각은 없을듯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이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위반했다며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하라고 지시한 후 삼성그룹은 지분 처분을 놓고 고심해왔다.

처분 규모가 7,500억원이나 되는 거액인데다 시장 상황이 썩 좋지 않았던 탓이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섰다. 삼성SDS 지분을 매각해 생긴 3,000억원 가운데 2,000억원을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하는 데 쓰기로 한 것이다.

실제 이 부회장은 굳이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로 사들일 이유가 적었다. 이미 이번 물산 주식 매입 전에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을 16.5%나 갖고 있었다. 그룹 전체적으로 소유 지분이 39.9%에 달했다. 삼성물산이 사실상의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사주를 더하면 50%가 넘어 지배력을 행사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번에 SDS 주식을 매각한 돈의 상당 부분을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하는 데 쓴 것은 책임경영의 일환이라는 게 재계의 평가다. 이는 나머지 5,500억원의 향방을 보면 이해가 쉽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 의무 매각 지분 중 3,000억원을 가져오기로 했다. 시장 소화물량은 블록딜(대량매매)로 처리되는 2,500억원 수준이다. 그만큼 처분 주식이 많고 금액이 커 한 번에 해소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게다가 당장 다음달 초까지 주식을 팔아야 해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했다.

삼성의 고위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이미 삼성물산에 대해 확고한 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추가 지분매입으로 지배력이 더 강해지는 것은 없다"며 "다른 계열사가 SDI가 갖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을 인수하게 되면 다시 순환출자 고리가 생기는 꼴이 돼 상당 부분을 이 부회장이 인수하기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생명공익재단은 예금 위주로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데 자본수익을 감안하면 삼성물산의 주식에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며 "재단 입장에서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의 책임경영은 엔지니어링이 보유한 자사주 300만주(302억원 규모)를 취득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삼성엔지니어링이 대규모 적자를 내고 올 들어 유상증자를 추진하게 되자 이 부회장은 최대 3,000억원 규모로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구주주 청약률이 99.9%에 달해 실권주가 많이 나오지 않자 일반공모에는 참여하지 않고 자사주 인수 및 다른 방법을 통해 주식을 사기로 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300억원 규모의 엔지니어링 지분 매입 이외에 추가로 700억원어치의 주식을 더 사들일 예정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의 사업과 경영 정상화에 큰 관심과 의지를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경영에 있어 자신만의 굵은 선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1·2차 빅딜을 비롯해 전용기와 삼성생명 본관 매각, 제일기획의 해외매각 검토 등은 이 부회장이 실용을 잣대로 그룹체제보다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계열사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여기에 이번에 이 부회장이 보여준 책임경영은 이 부회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팔기만 하는 삼성"이 아닌 필요와 상황에 따라 지킬 것은 지키고 지원해줄 부분은 끝까지 밀어준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삼성은 이날 이 부회장이 추가로 삼성SDS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은 그룹 재편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번 자금은 이 부회장의 삼성SDS 주식을 일부 매각해 조성했으나 현재 추가로 SDS 지분을 매각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재계의 고위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점차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며 "앞으로 사업재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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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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