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당구와 골프로 태동한 US 스틸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카네기씨.’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후 금융 황제 피어폰트 모건이 제철왕 앤드류 카네기에게 건넨 말이다. 그럴 만 했다. 1901년 2월 26일 카네기철강을 매각하며 받은 대금이 4억 8,000만 달러였으니까.

요즘 가치로 640억 달러(비숙련공 임금 상승률 기준)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카네기철강을 사들인 모건 하우스는 다른 철강회사 3곳과 합쳐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제철소 뿐 아니라 파이프업체, 심지어 철조망 제조 업체까지 있는 대로 사들여 한 회사, US 스틸(United States Steel)의 깃발 아래 통합시켰다.


US 스틸 출범을 위해 모건은 갖은 수단을 다 썼다.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도 사상 최대의 인수 및 합병(M&A)에 끼어들었다. 먼저 부통령 당선자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든든한 배경을 둘러줬다. 선거를 도와준 모건을 초청해 만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루스벨트는 새로운 철강 트러스트에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미국의 철강회사들을 통합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주인공은 도박을 좋아해 ‘백만 달러 배팅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재계의 거물 존 게이츠. 자신이 소유한 철조망회사를 비싸게 매각하려던 존 게이츠는 호텔에서 당구를 치다가 전광석화처럼 합병안을 떠올렸다.

실행은 카네기의 심복인 찰스 슈와브가 맡았다. 철광석을 캐는 데서 완제품 생산까지 전 공정을 하나의 지배회사 밑에 묶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를 주목한 모건은 카네기 회유 작전까지 맡겼다. 마침 청교도적인 삶을 살던 카네기는 혼외정사를 마다치 않는 모건을 경멸하고 있던 터. 슈와브는 카네기를 설득해 모건과 골프 회동을 주선했다.


뉴욕 인근 세인트 앤드류 골프장의 내기 게임에서 슈와브와 모건은 절묘하게 게임에 져 카네기를 승리감에 젖게 만들었다. 모건은 골프 회동 직후 카네기가 제시한 ‘4억 8,000 달러의 매각 대금을 주식이 아니라 채권으로 지급하라’는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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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업체를 매입할 때는 똑같은 공장을 짓겠다며 협박해 가격을 후려치던 모건은 왜 파격적으로 양보하며 철강 트러스트에 매달렸을까. 자신이 소유한 철강사가 카네기철강에 밀려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려면 독점 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모건은 미국은 물론 한창 두각을 나타내던 독일 철강업체와도 경쟁할 수 있는 독과점 업체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회사를 사들였다. 당연히 US스틸의 자본 규모도 커졌다. 연방정부의 1년 예산이 5억 2,500만달러, 미국 기업 전체의 자본금 총합계가 90억 달러 남짓하던 시절, US 스틸의 자본금은 14억달러에 이르렀다.

월가도 발칵 뒤집혔다. 투자자들은 불안에 빠졌다. 사상 최초로 자본금이 billion(10억) 단위로 표시되는 기업인 US 스틸이 쏟아낼 막대한 물량의 주식과 채권 신규 공급에 주가가 곤두박질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시장을 덮쳤다. 우려와 달리 38달러로 시작한 USS의 주가는 6개월 뒤 55달러까지 솟구쳤다. 모건 하우스가 시장을 떠받치는 힘이 그만큼 강했다. US 스틸은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으로 이름을 떨쳤다.

US 스틸의 영광은 더 이상 없다. 세계 10대 제철회사 가운데 6개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US 스틸은 15위를 겨우 지키고 있다. 후발주자인 현대제철보다도 한 단계 낮다. 금융황제 모건의 흔적도 거의 사라졌다. 길이 기억되는 것은 단 하나, 카네기의 명성뿐이다. 모건에게 받은 매각대금 가운데 3억 5,000만 달러를 자선사업에 투자한 덕이다.

US 스틸의 몰락은 남의 일 같지 않다. 한국의 발전상을 상징하던 기업인 포스코가 2007년 세계 2위에서 5위(2014년)로 밀려난 마당이니.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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