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실리콘밸리 신흥강자로 부상한 중국

두둑한 돈주머니를 차고 전 세계를 누비는 중국 벤처투자자들의 미국 기업 인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이들의 목표는 중국의 청정기술혁명 선도와 개인적 부의 창출이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미국 기술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BY JEFFREY BALL


홍콩 중심가의 이 식당은 홍콩에 거주하는 47세 벤처사업가 소니 우 Sonny Wu의 단골집이다. 목재 패널 벽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고, 웨이터들은 검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다. 메뉴에는 동서양의 컴포트 푸드 *역주: 마음의 위안을 가져다 주는 음식 도 들어 있었다. 최근 어느 일요일 저녁, 우는 윗단추를 푼 붉은색과 흰색의 체크셔츠, 청바지, 금장 파텍 필리프 Patek Philippe 시계 차림을 하고 있었다. 식사를 ‘공략’하는 모습은 그가 한 업계를 공략할 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는 구석진 자리에 조용히 앉아 다양한 요리를 순식간에 선택한 후 재빨리 먹어 치웠다.

치킨윙 바비큐 한 접시를 비운 후 뜨거운 차로 입가심하면서, 우는 자신이 LED 조명과 전기차 분야를 장악하려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두 분야가 폭발적인 성장을 앞뒀다고 확신했다. 가장 큰 성취는 지난해 3월 거뒀다. KKR과 베인&컴퍼니 Bain & Co. 같은 사모펀드 경쟁자들을 제치고 세계 LED조명 제조업계에서 선두권을 달리는 필립스 루밀레즈 Lumileds의 사업부 지분 80%를 인수한 것이었다. 이제 그는 루밀레즈의 캘리포니아 본사를 공장 신축 중인 중국으로 이전해 사업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2011년 보스턴파워 Boston Power의 경영권을 인수한 것도 유사한 전략이었다. 매사추세츠 주에 본사를 둔 보스턴파워는 보유한 첨단 기술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 기업을 중국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인지도가 낮았던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 신다양 Xindayang을 인수했다. 신다양이 쏟아내는 둥그런 윤곽선과 밝은 색의 전기차는 현재 보스턴파워의 배터리를 장착하고 있다. 이 모델의 가격은 약 1만 달러. 신다양은 지난해 이 모델을 약 3만 2,000대 판매했다.

우는 신다양의 판매량이 정상궤도에 오르면 테슬라 모터스 Tesla Motors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테슬라는 고급 전기차 제조사로, CEO 일론 머스크 Elon Musk와 함께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온 기업이다. 우는 “머스크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세계를 바꿀 순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손가락에는 바비큐 소스가 묻어 있었다. “솔직히 말해 대당 10만 달러짜리 차로는 세상을 못 바꾼다.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1만 달러짜리 전기차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씩 웃음을 지었다. “매일 캐비어를 먹을 순 없다. 치킨 윙도 먹어야지.”

우는 중국인이자 북미인이다. 무엇보다도 배짱이 두둑한 인물이다. 요즘 떠오르는 새로운 종류의 신기술 투자자의 전형이다. 어린 시절은 중국과 캐나다에서 보냈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캠퍼스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대학원을 중퇴했다. 표준 중국어, 광동어, 영어를 완벽한 발음으로 구사하며, 베이징, 홍콩, 실리콘밸리에 호화 주택과 사무실을 갖고 있다. 태평양이 마치 작은 웅덩이인 양, 비행기 1등석을 타고 중국과 북미 사이를 매년 열 번 이상 오가고 있다. 그는 어느 쪽에서도 토박이처럼 행동한다. 베이징에선 운전기사가 모는 포르셰 카이엔을 타고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닌다. 상하이의 5성급 호텔 징 안 샹그릴라 Jing An Shangri-La의 데스크매니저가 그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다. 월가의 초대형 은행들도 이제 그를 업계의 유력 인사로 보고 있다.

우는 미국 안팎의 기술기업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며 짧은 시간 내에 기업 제국을 구축한 인물이다. 그와 친밀한 중국 정부인사와 거부들이 그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단순하면서도 감정이 배제된 우의 전략은 새로운 시대의 시그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기술력은 좋지만 자국 내 성장 전망이 부족한 서구 기업을 인수해 중국으로 가져오고 있다. 해당 기업은 우와 그의 협력자들이 지원하는 자금과 시장을 통해 단시간 내에 급성장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오염물질 배출국인 중국은 지금 환경 정화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 도시 하늘을 뒤덮은 유독성 스모그의 심각성은 이제 공공보건 문제를 넘어 중국 지배체제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환경오염을 단속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중국 지도부는 석탄화력발전소의 효율성 개선을 의무화하고,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에 두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정부 계열 은행들에게 이러한 변화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중국은 바로 이 청정기술이 거대한 신시장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30년 전 전세계 티셔츠와 TV 생산을 장악했던 것처럼, 중국은 가까운 미래에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 생산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중국의 청정에너지 추진에 대한 미국의 반응에는 칭찬과 공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환경보호론자들은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 중국이 친환경적으로 변한다면 기후변화 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애국주의자들은 중국이 미국의 청정기술을 휩쓸어 가면 장기적으로 핵심 산업을 빼앗기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기술을 개발하는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인들 입장에선, 국적을 떠나 그들을 지원해 줄 자본을 구하고 있다. 중국 자본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잘 인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벤처투자업체 밴티지포인트 캐피털 파트너스 VantagePoint Capital Partners의 매니징 디렉터 스티븐 돌레잘렉 Stephan Dolezalek은 실리콘밸리에서 청정에너지 투자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는 최근의 비즈니스 트렌드에서 청정에너지 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와 투자자의 열망이 미국에 비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완벽하게 ‘훌륭한 시스템’에 포위되어 있다. 또 자기 이해관계를 지키려는 기존 세력들에게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미국이 이 덫에 걸리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12년 실리콘밸리의 태양광패널 기업 미아솔레 MiaSole가 기술 상업화에 고전하자, 투자자였던 밴티지포인트는 이를 중국 수력재벌 해너지 Hanergy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 참여했던 돌레잘렉은 당시 중국측이 상황을 파악한 후 상식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중국 관계자는 ‘알겠다. 그러면 우리가 하겠다’고 말했다.”

우와 같은 중개인의 역할은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해 미국의 청정에너지 노하우와 중국의 수요 간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이들은 상하이와 샌프란시스코를 모두 고향처럼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이지만, 보통 베이징에 거점을 두고 있다. 친분이 있는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투자자가 중국 정부의 꼭두각시라고 보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돈을 가져올 수 있으면 어디서든 끌어온다는 건 전 세계 기회주의적 투자자들의 공통적 속성이기 때문에 이들의 투자자본에는 미국, 일본, 유럽 자본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활동이 잦아들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상하이 주식시장은 포춘이 홍콩에서 우와 저녁식사 인터뷰를 가진 주에는 고전했지만, 그 이후로는 반등 중이다. 미 대선이 진행되면서 반(反)중국 감정이 자극되겠지만(선거 기간에는 흔한 일이다), 그 또한 미국 기업인들이 중국에 보내는 러브콜을 멈출 수는 없다. 본 기사가 발행되는 시점에 파리에서 진행 중인 기후변화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중국과 미국은 각자 약속한 수준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할 것이다.


기반다지기
중국자금의 실리콘밸리 유입은 몇 년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청정에너지기술을 중심으로 자금 흐름이 부쩍 증가했다. 중국의 개인, 기업, 시(市) 및 지방정부 등의 투자자본이 모여 탄생한 기술창업 지원 시스템 생태계가 싹을 틔우고 있다. 이 생태계는 미국 벤처기업에게 성장에 필요한 공간은 물론, 세계 최대 청정에너지 시장에서 성장을 달성할 방법까지 제공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최초로 중국 자본의 지원을 받은 창업보육센터 중 한 곳인 이노스프링 InnoSpring은 2012년 문을 열었다. 위치는 캘리포니아 주 샌타클라라 Santa Clara. 미식축구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San Francisco 49ers의 홈구장인 리바이스 경기장 Levi‘s Stadium과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건물이다. 중국 자동차부품 재벌인 완샹그룹 Wanxiang Group이 투자해 이노스프링이 세워졌다. 완샹은 최근 몇 년간 전기차 제조업체 피스커 Fisker와 배터리 개발업체 A123 등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노스프링이 미국 벤처기업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상하이에서 주로 근무하는 이노스프링의 회장 류왕펑 Wanfeng Liu은 최근 샌타클라라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중국 진출을 원하는 기업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실리콘밸리에는 중국 자본이 투입된 기업 인큐베이터가 20곳 가량 있다. 이노스프링과 후발주자인 SVC 에인절 SVC Angel(SV는 실리콘 밸리, C는 중국을 의미한다)의 창립에 참여했던 우핑 Ping Wu은 이들 대부분이 최근 3년 안에 세워졌다고 추정했다.

SVC는 실리콘밸리에 투자하는 중국 투자자들의 ‘느슨한 친목클럽(a loose club)’이라 정의할 수 있다. SVC는 현재 두 채의 신축 ‘클럽하우스’를 보유 중이며, 샌타클라라 사무실에 벤처보육센터가 들어서 있다. 실리콘밸리 건물이 흔히 그렇듯 검은 지붕은 BMW와 벤츠의 공동 차고처럼 생겼고, 사무실은 노트북 컴퓨터를 든 청년들이 모일 수 있도록 발랄한 색상의 의자와 공용 테이블로 가득 채워져 있다.

투자자들이 모이는 훨씬 진중한 분위기의 공간은 샌타클라라에서 북서부로 약 40km 곳에 떨어진 캘리포니아 주 벨몬트 Belmont에 위치해 있다. 샌프란시스코 만(灣)이 보이는 이 건물은 한때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 오러클의 본사였다. 건물 내부는 유리 벽으로 나눠진 사무공간으로 빼곡했는데, 유리 벽마다 입주업체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SVC의 초기 투자자 돈 예 Don Ye는 “모든 입주업체가 중국 펀드”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가 사용하는 2층 한구석의 사무실은 이 건물에서 가장 바다가 잘 보이는 곳으로 꼽힌다.


중간지대에서의 삶
중국 청정에너지 벤처캐피털 업계에 연륜 있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가 바로 예일 것이다. 올해 51세인 그는 베이징의 투자업체 칭 캐피털 Tsing Capital의 창립 파트너다. 2002년 38세 나이로 힘겹게 첫 펀드를 창업했을 때 그가 모은 금액은 1,300만 달러였지만, 2012년 말에는 이 펀드 규모가 2억 8,200만 달러로 늘어났다. 그의 고객 중에는 세계 금융계에서도 최고 영향력을 가진 투자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BP, 화학업체 BASF, 로봇 및 자동화기업 ABB, 미쯔이 같은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 세계은행 국제금융공사(International Finance Corp.)와 유럽의 연금 및 국부펀드들이 그에게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의 검색엔진 바이두 Baidu를 공동창업한 에릭 쑤 Eric Xu 등 부유한 가문들도 그의 투자자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다. 예의 베이징 사무실 내 손님 응접실에는 커다란 다기 세트가 놓여 있고, 진열장에는 예가 앨 고어 등 다양한 유명 인사들과 찍은 사진이 붙어있다.

예는 현재 3억 5,000만 달러를 목표로 5번째 펀드를 모집 중이다. 명분은 중국의 심각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 찾기다. 예와 파트너들은 중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려는 서구, 특히 미국 기업들에게 펀드의 상당 부분을 투자할 예정이다. 예는 “중국의 환경은 현재 암에 걸려있다”며 “하지만 중국은 돈이 많다”고 말했다.

예는 그 동안 벤처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왔다. 중국의 강과 대기오염에 거센 비난을 가하는 예의 등 뒤로는 아름다운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장소는 캘리포니아 주 우드사이드 Woodside에 위치한 그의 별장이었고, 우리는 후원의 개인 수영장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별장 차고에는 쉐보레 볼트 Volt와 함께 시가 9만 달러짜리 벤츠 SUV가 주차돼 있었다. 후원의 나무 사이로는 불교 경전의 구절과 잠언이 적힌 색색의 깃발이 매달려 있었다. 예는 몇 년 전 불교에 귀의한 후 티베트의 고승에게 개인 교습을 받고 있다. 포춘과의 인터뷰가 진행될 동안 고승은 부엌 식탁에 앉아 평화롭게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예는 올해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감상 파티를 주최했는데, 앞으로도 매년 이 행사를 열 생각이라고 했다.

예는 언제나 미국과 중국 사이 중간지대에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인터뷰 도중 예는 찻잔 옆에 놓인 두 대의 휴대전화 중 한 대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hello)?” 그가 영어로 말했다. “웨이 Wei /*역주: 중국어로 ‘여보세요’/” 발신인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깨닫자 그는 곧바로 중국어로 바꿨다. 상황이 순탄치 않은 한 투자처로부터 온 전화였다. 고급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하는 실리콘밸리 벤처기업 애티에바 Atieva였다.

애티에바는 테슬라 부사장이자 이사였던 엔지니어 버나드 체 Bernard Tse가 2006년 퇴사한 후 1년 만에 설립한 회사다. 이 업체는 설립 초기부터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이 풍부한 중국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2009년에는 칭 캐피털 Tsing Capital이 이 업체에 8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애티에바는 칭의 도움을 받아 2014년 투자자유치 라운드에서 2억 달러를 확보하는 등 추가로 자본을 유치하기도 했다. 거의 전적으로 중국 자본이었다. 중국 최대 자동차 제조사 중 한곳이자 국영기업인 베이징자동차그룹(BAIC)이 1억 달러를 투자한 최대 투자자였다.

예는 애티에바의 CEO 체와 만나는 자리를 주선해주었다. 하지만 포춘 기자가 팰로 앨토 Palo Alto의 산업 밀집 지대에 위치한 나지막한 건물인 애티에바 본사에 도착했을 때, 체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가 대화를 꺼렸던 이유는 며칠 후 짐작할 수 있었다. 예는 “두 시간 예정이었던 이사회 미팅이 회사 미래에 대한 의견차로 인해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겼다”고 설명했다. 애티에바와 투자자 중 몇몇은 전기차 일반화라는 목표 하에서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 예는 “한 바구니에 함께 있는 사이”라고 표현했다.

필자는 몇 주 후 중국을 방문했다. 예와 함께 간 베이징의 BAIC 본사는 독일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로, 외벽을 철판으로 꾸며 거대한 배처럼 보였다. 내부 복도는 볼링 레인처럼 길고 반짝거렸다.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으니 근처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신발 고무창이 바닥에 닿으면서 내는 ‘쉭, 쉭’ 소리가 유독 컸던 탓이었다.

BAIC는 애티에바에 투자를 하면서 이 업체의 완성차 제조 공장을 중국에 건설하는 합작투자를 구상했다. BAIC는 자체 전기차도 이미 양산 중이다. 2014년 판매량은 총 5,510대로, 전체 전기 승용차 판매량 240만 대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BAIC는 향후 전기차 생산량을 큰 폭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 전략의 일환으로 속도와 중량, 고급스러움, 충전 효율성 모두를 개선한 애티에바 차량을 생산하려는 것이다. 애티에바를 테슬라의 고급 전기차 모델 S의 경쟁자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중국식 고속 확장
중국의 상업화 전략은 예의 투자를 받은 또 다른 실리콘밸리 청정 에너지 기업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캘리포니아 주 서니베일 Sunnyvale에 위치한 선프림 Sunpreme은 태양광전지의 효율성을 높이는 혁신적 방법을 개발했다. CEO 아쇼크 싱하 Ashok Sinha는 벨 연구소(Bell Laboratories)에서 20년, 실리콘밸리의 유명 반도체설비 제조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Applied Materials에서 수 년간 근무한 후 2007년 선프림을 창업했다.

싱하는 세계 태양광산업의 중심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던 중국에서 상당 시간을 보낸 후, 공장을 중국에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 11월 칭 캐피털은 홍콩군도에 속한 라마섬 Lamma Island에서 자신의 회사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업체 몇 곳을 초대해 저녁 만찬을 열었다. 그때 저장성 자싱 Jiaxing 시에서 온 한 참석자가 싱하에게 공장을 그곳에 세우라고 제안했다. 당시 자싱 시는 지붕과 가로등에 태양광패널을 설치하는 야심 찬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싱하는 이후의 전개 과정이 전형적인 중국식이었다고 말했다. 자싱 시 관료들과의 협상이 즉각 시작됐다. 그는 “3월에 협상이 끝났다. 5월에 개장식을 가졌고, 크리스마스가 끝날 무렵 제품이 출시됐다”고 말했다. “그런 속도는 난생 처음이었다. 세계 다른 어느 곳에서도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싱하는 자싱 시와 인근 지역이 선프림에 제공한 인센티브의 가치가 약 500만 달러라고 평가했다. 얼마 전 한 토요일 아침(선프림 중국 공장은 토요일에도 근무를 한다),

선프림 공장의 생산공간은 윌리 웡카 Willy Wonka의 초콜릿 공장 *역주: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렛 공장’ 속 배경 과 닥터 노 Dr. No *역주: 초기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 의 지하 은신처를 섞어놓은 듯했다. 태양광전지 생산라인에는 다양한 용광로가 있었다. 용광로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실리콘 조각 위로 코팅이 겹겹이 쌓이는 과정을 통해 태양열을 전기로 변환하는 기능이 향상되고 있었다. 선프림 근로자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하일체형 흰색 작업복 차림이었다. 이들이 기계에서 기계로 실리콘 조각을 옮기는 모습은 세심하게 짠 한 편의 안무 같았다. 각 코팅물질의 화학적 구조와 코팅 방식은 선프림의 최대 기업비밀이었다.

싱하 CEO는 향후 2년간 선프림의 생산량을 약 25배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몇 달간 그는 이 목표 달성을 위해 투자금 2억 5,000만 달러를 유치하고자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싱하에 따르면 현재 여러 투자자와 협상이 진전되고 있는 상태이며, 그중에는 세계 최대 태양광 업체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의 선 에디슨 Sun Edison-최근 주가가 하락했다-도 있었다. 싱하는 뉴 멕시코 주와 버지니아 주 정부가 신공장 유치를 위해 선프림과 미팅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두 주가 제시한 1,000만 달러 이상의 보조금은 쑤저우시의 제안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자싱 인근에 위치한 쑤저우는 상당한 수준의 태양광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다. 쑤저우시 당국은 선프림이 미국 은행에서 적용 받는 대출금리에 훨씬 못 미치는 4%의 이율로 수백만 달러의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적극 나섰다. 싱하는 이를 “매력적인 자금”이라고 평가했다.


테슬라와의 대결
돈예를 중국 청정에너지 벤처투자자들의 홍보대사라 한다면, GSR의 우는 핵심 전략가라 할 수 있다. 보유주식 가치가 수억 달러에 달하는 우는 고급 프랑스 와인과 빠른 독일차, 글로벌 빅딜 애호가다. 그는 “중국이 청정기술제조업의 미래”라고 단언했다. “미국이 방해할 순 있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결국 경쟁우위가 관건이다.”

1968년생인 우는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이 서구와의 관계를 복원한 지 얼마 안 되었던 1981년, 13세였던 우는 교사인 양친을 따라 밴쿠버로 이주했다. 우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현재도 캐나다 국적을 갖고 있다. 이후 그는 UC버클리 물리학 박사과정에 입학했지만 “노벨상을 탈 확률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중퇴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캐나다 통신 및 반도체 업계의 강자인 노텔 Nortel에 입사했고, 노텔 직원 신분으로 중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벤처창업을 위해 퇴사했고, 2004년 GSR을 창립했다. 윈난 Yunnan 성에서 시작해 인접국으로 흐르는 3개 강 중 하나인 진사강의 영문 명칭(Golden Sand River)의 머릿글자를 딴 이름이었다. 세 강 중 GSR만이 중국으로 회귀한다. 우의 투자이론에 어울리는 비유라 할 수 있다.

2005년 종료된 GSR의 첫 투자자 모집 결과, 7,500만 달러가 모였다. 10년이 지난 현재, GSR이 모집한 투자금은 2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최근에는 50억 달러를 목표로 한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중국인 투자자 외에도 세계은행과 네덜란드의 알핀베스트 파트너스 AlpInvest Partners 등이 투자를 했다. 베이징 최고층 빌딩인 월드트레이드센터타워 III(총 81층)의 56층 공간이 거의 모두 GSR의 사무실로 채워져 있다.

GSR은 거래를 할 때 회사 돈을 단순 투자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중국 정부 및 다른 투자자 인맥을 활용해 이들도 해당 기업에 투자하도록 주선한다. GSR의 전기차 시장 진출 시도가 좋은 예이다.

이 전략의 중심에는 2005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설립한 보스턴파워가 자리잡고 있다. 전직 배터리업계 컨설턴트가 세운 이 회사의 목표는 노트북용 고효율 리튬이온배터리 생산이다. 보스턴파워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직을 오래 역임한 리처드 체임벌린 Richard Chamberlain은 회사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배터리 가격이 하락했고, “생산설비 규모가 너무 작았다”는 것이었다.

2011년 보스턴파워는 큰 발걸음을 두 번 내디뎠다. 챔벌레인은 “먼저 중국 정부가 엄청난 보조금을 (전기차에) 지급한다는 사실을 알고 컴퓨터용 대신 자동차용 배터리로 전략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보스턴파워가 GSR의 투자를 받아들인 것도 그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 소식은 가치 있는 미국 기술을 중국에 빼앗겼다는 우려를 미국 국내에 불러일으켰지만, 우는 이를 일축했다. “우리는 회사를 파산에서 구했다.”

GSR은 자체 자본 5,000만 달러를 보스턴파워에 투자했다. 미국과 유럽의 저명 기업, 중국 정부 관련 기관 및 민간 투자자 등으로부터 총 3억 달러를 추가로 유치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또, 일련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상하이 서쪽 리양 Liyang 시에 상업성 있는 규모의 생산공장을 구축했던 비용을 보전받도록 도운 것이었다. 보조금 중에는 지역정부가 공장을 건설한 후, 그 비용을 회사가 몇 년에 걸쳐 상환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공장은 2013년 중반 무렵 완공돼 가동을 시작했다.

2014년 GSR은 중국 전기자동차 회사 신다양에도 투자를 했다. GSR이 이 기업에 투자한 자체 자본은 총 1,500만 달러였다. 신다양은 2001년 전기자전거, 스쿠터용 모터와 제어장치 제조업체로 출범했다. 2012년에는 순이익율을 높이기 위해 저가 전기차 시장에도 진출했다. 자동차 설계에는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자동차의 곡선형 디자인이 배터리의 한계를 숨길 수 없었다. 한 중국제 모델은 1회 충전으로 약 120km밖에 주행하지 못했다.

현재 보스턴파워가 생산한 배터리는 거의 모두 신다양에 납품되고 있다. 신다양의 차량은 볼보를 소유한 자동차 그룹 저장지리홀딩그룹 Zhejiang Geely Holding Group Co. 과의 합작벤처 형태로 생산되고 있다. 보스턴파워의 배터리 장착으로 1회 충전당 주행거리는 약 177km로 늘어났다. 이는 단순한 운전자 편의 향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중국이 최근 시행한 전기차 인센티브 제도하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소비자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연비이기 때문이다. 이 차량의 소매가격은 2만 3,400달러 정도지만 보조금을 받을 경우 실제 가격은 9,300달러 정도로 낮아진다.

어느 오후 포춘에 공장을 견학시켜 준 신다양의 간부 장쑤빈 Shu Bin Zhang은 2020년까지 30만 대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는 “판매 대수가 얼마가 됐든 테슬라를 넘어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신다양의 차는 테슬라와 완전히 달랐다. 광고에 따르면 시동을 걸면 7초 만에 시속 49km까지 가속한다. 산둥 Shandong 성에 위치한 신다양 공장 주변에서 직접 시승해 본 결과, 실제 소요시간은 약 10초였다. 가속 시 차의 후미가 강하게 덜그럭거렸지만, 장은 “웬만한 사람은 참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업계에서 아직 중소업체인 보스턴파워는 대(對) 신다양 매출에 의지해 생산능력을 확장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체임벌린은 리양 공장의 생산량이 생산 능력에 크게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아직 계획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GSR은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현재는 보스턴파워의 다음 공장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패키지를 놓고 베이징 남동쪽 공업도시인 텐진 Tianjin 정부 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은 보스턴파워의 미래가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 중국에서 탄탄하다는 걸 의미한다. 말투에서 보스턴 억양이 물씬 묻어나는 체임벌린은 회사가 미국에 있었다면 이처럼 빠른 성장은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라 말했다. “미국이었다면 무척 고전했을 것이다.”


마스터플랜의 수립
우의 가장 큰 성과는 2015년 봄 필립스 루밀레즈 사업부 인수전에서 거둔 역전승이었다. 한때 우의 인수 의사가 진심인지 의문을 품었던 필립스의 거래 총괄투자은행 모건스탠리 등 인수전의 많은 참가자들이 이젠 그 의심을 버리고 있다.

우가 KKR과 베인 등을 꺾을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루밀레즈의 기술을 통한 수익 창출 능력을 놓고 도박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우는 중국에 보유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루밀레즈의 생산량을 빨리, 그것도 대폭 늘릴 수 있다고 추산했다. 중국인 위주로 구성된 투자자 그룹은 총 13억 달러의 자본을 내놓았다. 또 중국은행(Bank of China)을 통해 시장금리보다 훨씬 낮은 3%의 이율로 19억 달러를 조달하겠다고 약속했다.

인수는 미국 내 외국인 대미국투자위원회(CFIUS)의 인가를 받으면 최종 확정될 것이다. CFIUS는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 자산의 해외 매각을 저지할 수 있다. 우는 CFIUS 승인을 위해 워싱턴에서 로비 활동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향후 중국 여러 곳에 조성될 예정인 루밀레즈 공장 제 1호의 건설을 이미 시작했다.

체스 마스터가 자신의 전략이 게임판 위에서 어떻게 펼쳐지는 지 살피듯, 우는 자신의 글로벌 전략이 서로 맞물려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우리는 LED조명의 모든 구성 요소를 손에 넣었다. 전기차와 전기배터리의 구성 요소도 모두 손에 넣었다.” 어느 날 오후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우가 득의양양하게 한 말이다.

인터뷰는 상하이 징 안 샹그릴라 호텔 55층의 회원전용 라운지에서 이뤄졌다. 우는 한쪽 구석 창가에서 시원한 음료를 홀짝인 후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너무 오만한 건지 모르겠다. 야망이 너무 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에겐 의구심이라기보단 예의상 하는 말처럼 들렸다. 중국은 밤이 빠르게 찾아오기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가운데 나라(中國)’의 하늘이 꽤 맑은 편이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꽉 찬 거대한 유리창을 통해 우는 아주 먼 곳까지, 아주 많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었다.


중국의 청정기술 쇼핑 열풍
중국 투자자들이 미국 기업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 사례 5가지를 소개한다.

1. 중국 투자자: GSR 벤처스미국 기업: 필립스 루밀레즈 사업부분야: 조명거래 내용: 중국 벤처캐피털 GSR이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필립스의 LED조명사업부 루밀레즈를 33억 달러에 인수했다. 인수대금 중 19억 달러가 중국은행 대출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2. 중국 투자자: 완샹그룹미국 기업: 피스커자동차분야: 전기차거래 내용: 2014년 중국 자동차 부품업체 완샹이 파산 위기에 몰린 전기차업체 피스커를 1억 4,9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올해는 카르마 Karma 자동차로 사명을 바꿨다.

3. 중국 투자자: 완샹그룹미국 기업: A123 시스템스분야: 배터리거래 내용: 2013년 완샹그룹이 파산을 신청한 A123의 주력분야인 배터리사업을 2억 5,700만 달러에 인수했다.

4. 중국 투자자: 해너지홀딩그룹미국 기업: 미아솔레분야: 태양광거래 내용: 중국 수력발전업계 강자인 해너지가 2012년 태양광전지 박막필름 생산업체인 실리콘밸리 기업 미아솔레를 3,000만 달러라는 헐값에 인수했다.

5. 중국 투자자: GSR벤처스미국 기업: 보스턴파워분야: 배터리거래 내용: 2011년 GSR이 약 1억 2,500만 달러에 배터리 제조사 보스턴파워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중국으로 이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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