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전쟁고아의 아버지' 헤스 미국 대령 1주기 추모식

1·4 후퇴 때 고아 1,000명 후송

4일 서울서 인도주의 정신 기려

헤스 대령

6·25전쟁 1·4후퇴 당시 서울의 고아 1,000여명을 제주도로 후송한 '전쟁고아의 아버지' 고(故) 딘 헤스 미 공군 대령의 1주기 추모식이 4일 서울에서 열린다.

헤스 대령은 6·25전쟁 1·4후퇴 때 군목 고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과 함께 서울의 전쟁고아들을 미 공군 수송기로 제주도까지 안전하게 피신시킨 일화로 유명하다.

중공군이 서울로 밀고 내려오는 급박한 상황에서 헤스 대령은 미 공군 지휘부를 끈질기게 설득해 C-54 수송기 15대로 서울의 고아 1,000여명을 제주도로 옮겼다. 잔혹한 전쟁터에서 빛난 그의 인도주의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고 미국 영화배우 록 허드슨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헤스 대령은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당시 미국은 한국의 요청에 따라 F-51 전투기 10대를 우리 공군에 인도하기로 했고 헤스 대령은 이 임무를 수행한 제6146 기지부대의 부대장에 임명됐다. 헤스 대령은 '바우트 원'이라는 이름의 한국 공군 건설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이는 한국 공군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6·25전쟁 때 1년 동안 250여회나 출격하는 초인적인 기록을 남겼다. 당시 미 공군 조종사가 100회 이상 출격하면 비전투 지역인 일본이나 미국으로 전출할 수 있었던 것을 고려할 때 그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싸웠는지 알 수 있다.

헤스 대령이 탔던 전투기 F-51D 무스탕 18번기에는 '信念(신념)의 鳥人(조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의 좌우명인 'By faith, I fly(믿음으로 하늘을 난다)'를 한국 공군 정비사가 우리말로 옮겨 써준 것이다. 한미 공군 우의의 상징과도 같은 이 글귀는 지난 1982년 같은 제목의 군가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한국을 잊지 못했던 헤스 대령은 전쟁고아를 위한 기금을 만들어 한국의 고아원을 지원했다. 그는 한국 고아들이 전쟁통에 전염병과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을 비통한 심정으로 회상하고는 했다.

생전 "남북통일을 볼 때까지 살고 싶다"고 말했던 헤스 대령은 지난해 3월3일 미 오하이오주에서 98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공군은 "한국 공군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전쟁고아 지원을 아끼지 않은 헤스 대령의 숭고한 정신을 이번 추모식에서 기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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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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