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경기 불황의 그늘… 퇴직금 분쟁 폭증

작년 6,986건… 하루 20건꼴

기소 경영인도 3,000명 육박

수출 둔화와 내수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직원 퇴직금조차 주지 못해 재판에 넘겨지는 경영인들이 최근 5년 새 급증했다. 심화하고 있는 경기 불황 속에 돈 쓸데는 많은데 회사 곳간은 비어가는 중소기업들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수출과 내수 부진이 고착화되고 있는데다 생산·소비·투자의 ‘트리플 침체’ 가능성마저 커지고 있어 ‘기업 재정악화→체불임금 증가→서민경제 타격’ 라는 악순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직원 퇴사 후 2주 내 퇴직금을 주지 않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검찰에 접수된 사건은 전국적으로 6,986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이는 2,892명에 이른다.


퇴직금 지급 문제를 둘러싼 경영주와 근로자 간의 분쟁이 하루에 20건 가까이 발생해 이 가운데 8명의 경영자들이 기소된 것이다. 퇴직금을 제때 주지 않아 발생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사건은 해마다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퇴직금 미지급 사건은 2012년 6월까지만 해도 근로기준법 또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라 처리됐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대검찰청 지침에 따라 퇴직급여보장법만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그해 500여건에 불과했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사건 접수 건은 2013년 5,000건을 넘어서더니 다시 2년 만에 7,000건에 육박했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이들도 2013년 2,000명 초반에서 2년 만에 3,000명 가까이로 늘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수십 년간 거래를 해왔던 대기업에서 올해 물량을 줄이면서 총 25명 직원 가운데 4명을 최근 퇴사 조치했다”며 “물량은 줄어드는 데 단가 인하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올해 회사를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에 이어 2대째 기업은 운영 중인데 지금처럼 힘든 시기는 IMF 이후 처음”이라며 “대기업을 비롯한 거래처들 역시 사정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꾸려나갈지 고민에 최근 불면증마저 생겼다”고 덧붙였다.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해 법정에 서야 하는 경영인들이 해마다 빠르게 늘고 있는 배경에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극심한 자금난이 자리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한파의 영향으로 수출은 줄고, 내수마저 위축되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말 그대로 국내 기업들의 돈줄이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지출할 곳은 많은데 수입은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 빚만 늘어가면서 결국 ‘경영 포기’라는 극한 상황에 내몰리는 기업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역 기업 가운데 파산을 신청한 곳은 307개사로 2010년 이후 가장 많았다. 파산 신청 기업 수는 2010년 만해도 122개으로 사흘에 한 개꼴로 나왔다. 하지만 경기 한파가 지속되면서 지난해에는 하루에 한 개꼴로 기업이 파산이라는 벼랑 끝에 내몰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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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한 관계자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사건이 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경기 불황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자금난 때문이다”며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지속된 경기침체에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여러 기업이 내부 자금 부족으로 기본적인 퇴직금 문제마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법적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퇴직금은 물론 임금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기업들이 최근 몇 년 새 급증하면서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도 함께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부 대기업마저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 중소기업은 말 그대로 벼랑 끝을 걷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 체불 임금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로 만성적인 ‘돈맥경화’에 허덕이는 기업들이 늘면서 지난해 임금·퇴직금 등 체불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근로자만 30만 명에 육박,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체불임금 규모만해도 1조2,993억 원에 달했다. 기업들이 주지 못한 임금·퇴직금의 합산 금액인 체불임금은 2011년 만해도 1조 원 초반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매년 최소 200억 원에서 2,000억원 가량 늘면서 2014년에는 1조3,000억 원대를 돌파했다. 체불임금이 있는 근로자 수도 2010~2011년 27만 명에 머물렀으나 최근 2년간은 29만명 선을 기록해 최근 경기악화를 고려하면 조만간 30만명 선을 넘어설 위험도 큰 상황이다. 그만큼 경기 침체 여파가 지속되면서 곳간이 비어 가는 중소기업들이 늘어 근로자 임금·퇴직금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셈이다.

고용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체불임금의 증가 추세는 국내 경기 상황과 맞물려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며 “경기 부진으로 기업들이 자금줄이 말라가고 있는데다 대기업들의 투자 전망도 불투명해지면서 체불임금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 몇 년간 체불임금이 발생하고 있는 대부분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직원 수 30인 미만의 중소기업으로 재정적 기반이 약한 곳이라 은행 등 제도권 대출도 쉽지 않다”며 “수출 부진은 물론 내수 부진까지 겹치면서 대기업에서 수주하는 물량과 함께 투자마저 급감하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 경기 사정이 크게 나아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여러 경기 지표들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라 전문가들은 앞으로 무너지는 중소기업이 늘면서 서민경제마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글로벌 경기 한파 탓에 수출·내수 부진이 지속될 경우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국내 중소기업 사이에 빠르게 퍼지면서 체불임금 증가로 서민들의 생계가 위협 받는 상황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발표한 ‘2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364억 달러로 전년 동월대비 12.2%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12월부터는 수출액이 3개월 연속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넘게 급감하는 상황이다. 이는 내수도 마찬가지로 각종 할인행사와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가 지난해 말로 끝나자 소비가 급격히 줄어 1월 소매판매는 전월인 지난해 12월보다 1.4% 감소했다. 같은 시기 투자도 부진한 상황으로 설비투자는 기계류가 2.5%, 운송장비가 11% 감소한 탓에 6.0%나 줄었다.

경제계의 한 관계자는 “체불임금을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의 막힌 숨통을 터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수출은 물론 내수 등 유효수요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는 소비진작과 투자 활성화 등을 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적극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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