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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공지능(AI)의 대결이다.
오늘부터 이세돌 9단은 '호모사피엔스의 대표'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역사적인 대결을 펼친다. 오는 15일까지 모두 다섯 번 경기를 벌여 승패를 가른다. 이기는 쪽에는 상금 100만달러가 돌아간다.
승패를 점치기는 어렵다.
이 9단의 우세를 점치는 쪽은 무수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바둑 자체의 오묘함을 인공지능이 완전히 깨달을 수 없다는 데 방점을 둔다. 바둑은 첫수를 주고받는 경우의 수만 12만9,960가지가 된다. 361개의 점을 모두 채워가는 경우의 수는 무려 10의 170승에 이른다. 인간의 뇌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수들을 과연 알파고가 흉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9단 역시 "정상급 프로 기사들의 바둑에서는 계량화할 수 없는 '비틀기'나 '흔들기'가 나오는데 알파고는 이에 대한 훈련이나 감각이 없는 듯하다"며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 측은 승패 가능성을 50대50으로 보고 있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유럽 챔피언 출신인 중국계 프로 기사 판후이 2단을 5대0의 스코어로 이긴 바 있다. 그 후 실력이 몰라보게 향상됐다는 것이 구글의 설명. 지금도 하루 3만번의 대국으로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한 달이면 사람이 1,000년 이상 걸릴 100만번의 대국을 학습할 수 있다. 무한 학습 능력에 무실수·무감정을 장점으로 가졌다. 딥러닝으로 인간처럼 학습하고 배울 수 있다. 수많은 대국으로 알파고는 탁월한 수 읽기 능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에게 와 있다.
IBM이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은 주요 병원과 협업하면서 의사를 대신해 폐암 진단, 백혈병 치료법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금융산업에서도 활용된다. 로봇이 투자 상담을 대신하는 로보어드바이저 회사들이 취급하는 자산 규모가 지난해 200억달러에서 5년 뒤 2조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될 정도. 제조 현장에서도 AI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GE와 BMW·하이얼 등은 제조현장에 인공지능을 적용한 스마트 팩토리를 만들고 있다. 행정과 치안 같은 공공 서비스, 유통, 교육, 교통 등의 분야에도 인공지능이 도입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인공지능의 시대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 이벤트는 그 서막이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대결이 될 수도 있다. 이미 19년 전 체스에서는 인간 대표가 인공지능 컴퓨터에 패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맥없이 무너질 수 없다. 호모사피엔스는 지난 수만 년간 수많은 위기를 겪으며 생존 기술을 터득해 지구를 지배하게 되지 않았는가. 쉽게 무너질 수도 없고 무너져서도 안 된다. 인공지능의 거대한 힘은 편리하다. 하지만 구조와 영향력을 모르면 압도당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세돌 프로는 인간을 대표하는 마지막 보루다. 대결이 끝난 뒤 이세돌의 환한 웃음을 보고 싶다. 이세돌 화이팅!
문병도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d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