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외환 거래 등에서 상당한 헷지 능력이 있어 일반적인 영업에서는 환율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하지만 은행장들이 환율에 부쩍 민감해진 것은 크게 성장한 해외 자산 때문이다. 회계 처리상 해외 법인이나 해외 지점에 납입하기 위해 조달한 자본금이 환율의 움직임에 따라 국내 당기 순이익에 큰 영향을 끼치는 구조다.
해외 법인에서의 환리스크 문제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은행 중국 법인들 중 상당수가 위안화 평가 절하로 환 손실을 입었다. 회계 처리를 달러화로 하는 은행들의 손실은 더 심했다. 세계 경기 불안으로 환율이 요동치는 가운데 환율 리스크가 덜한 금융업권도 환율에 따라 출렁이는 모습이다.
13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KEB하나·신한·우리·국민 등 4대 대형은행의 해외법인 자본금과 해외지점 갑기금은 총 41억1,450만 달러에 달한다. KEB하나은행이 12억9,920만 달러로 규모가 가장 크고, 신한은행 11억6,400만달러, 우리은행 11억730만달러 등의 순이다. 이 돈은 해외에서 은행들이 영업을 하기 위해 현지 금융당국의 규제 수준에 맞춰 들여간 돈이다.
문제는 회계처리를 할 때 해외 법인 등에 투입된 자본금이 장부가로 투자자산에 기록되는 반면, 자본금 조달을 위해 일으킨 달러 부채 등은 시장 환율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현행 환율법은 재무제표에서 자본금에 대해서만 조달 시점의 환율로 고정해 적용하고 자본금을 제외한 모든 항목들을 현행 환율에 의해서 환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A은행이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인 시점에 미국 지점에 1,000만 달러를 조달해 투자했다면 자산은 130억 원으로 고정돼 있지만, 부채는 이후 시장 환율에 따라 결산 시점마다 변동된다. 환율이 1,200원으로 하락하면 부채가 120억원이 돼 자산 대비 10억원의 이익을 얻지만, 환율이 반대로 1,400원으로 상승하면 10억원의 손실을 인식해야 한다. 원화 강세가 이어져야 장부상 이익이 커지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1조원 이상 해외에 자본금을 댄 대형 은행들의 경우 환율 변동에 상당히 민감해지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이 같은 환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일찌감치 회계 시스템 상 헷지 방식을 도입했지만, 다른 은행들의 경우 아직까지 환율의 움직임에 따라 해외 자산의 장부상 손실과 손익을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은행의 한 재무 담당자는 “쉽게 말해 원달러 환율이 10원 움직이면 당기 순이익이 100억~200억 원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구조”라며 “영업상 손익이나 손실은 아니지만 당장 밖으로 보여지는 지표가 그렇게 나오다 보니 은행 고위층은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