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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정PD의 Cinessay ]누군가의 새로운 부모가 된다는 것은...영화 '스텝맘'

영화 ‘스텝맘’ 포스터영화 ‘스텝맘’ 포스터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또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만난 게 아니고서야 나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그 사람의 세계가 낯설고 싫기도 합니다. 특히 과거의 사랑은 늘 분란의 원인이 되는데, 심지어 상대방에게 아이가 있다면? 아, 이건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내가 선택한 사람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짊어질 각오가 되어 있어야 성숙한 사랑이겠지만, 하루에도 열 두번씩 마음이 변하는 인간이기에 생전 몰랐던 아이의 새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실, 시련의 연속입니다. 특히 가정에서 해야 할 역할이 더 많은 여자들에게는 최고난도의 도전입니다. 영화 <스텝맘>(1999년작)은 여성이 좌충우돌의 과정을 겪으며 새엄마로 안착해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우리나라와 문화적 차이가 큰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 내 에피소드들은 우리에게도 많은 공감거리를 제공합니다.


이사벨(줄리아 로버츠)은 아이 둘이 딸린 이혼남 루크(에드 헤리스)와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유능한 사진작가인 이사벨은 다소 까칠한 친엄마 재키(수잔 서랜든)와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돌보게 되는데, ‘아이를 낳아본 적도, 길러본 적도 없는’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게 어린애 구박이라고, 한창 사춘기인 딸 안나는 송곳 같은 말들로 이사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말썽꾸러기인 아들 벤은 툭하면 사라져버려 이사벨을 힘들게 하지만, 성숙한 그녀는 루크나 새엄마가 아이들과 멀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루크가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지, 자신이 절대로 채워줄 수 없는 사랑의 교감을 친엄마와 나누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죠. 이사벨의 진심이 통했는지, 소소한 일상 속에서 세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재키의 암이 재발하면서 가족들은 다시 큰 슬픔에 빠지게 되지만, 전처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루키와 아이들을 남겨놓고 떠나야 하는 재키의 마음을 보듬으려는 이사벨의 우정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 아마도 두 여자는 누구보다 깊은 신뢰를 갖게 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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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계모, 계부의 학대로 아이들이 희생되는 뉴스가 부각되면서 이 시간에도 최선을 다해 자녀를 양육해온 새엄마나 새아빠들까지도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사실 아동학대의 80% 이상은 친부모가 저지릅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면 잘못했을 때 따끔하게 야단도 칠 수 있지만, 새 부모들은 쉽게 그러지 못합니다. 영화에서도 버릇없이 심한 말을 내뱉는 안나를 친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혈연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잘하나 못하나 지켜보는 듯한 주위의 차가운 시선도 새 부모들을 지치게 합니다. 뉴스에 나오는 계모, 계부의 극단적인 범죄는 특정인이 저지른 개별 사안으로 냉정하게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사별이든, 이혼이든 다양한 이유로 재혼가정이 늘고 있는데 ‘역시 계모계부들은 문제가 많아’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로 고통을 받을까요. 부모가 불행한데 아이들이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이 영화에서 저는 어린 벤이 하는 대사가 인상 깊었습니다. 소소하게 새엄마의 험담을 하는 친엄마에게 “엄마가 미워하라면 미워할께요”라고 말하는 장면인데요, 결국은 어른들 눈치 보느라 아이들이 마음 편히 새부모에게 마음을 주는 않는 면도 있습니다. 내가 낳지 않은 자녀가 “아버지, 어머니,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은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용기 있고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한 세상의 모든 새엄마새아빠들에게 힘을 주고 싶은 요즘입니다. 어떤 형태의 가정도 존중받고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KBS1라디오 <생방송 오늘 이상호입니다>연출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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