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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노말리사'... 동일자의 지옥에서 길을 잃은 사랑이여

권태 빠진 중년남… 사랑이 그를 구원할까?

'이터널 선샤인'의 천재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의 각본·연출작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실존 철학적 문제 풀어가

ANOMALISA, by Paramount PicturesANOMALISA, by Paramount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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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철학자 한병철은 지난해 국내 출간한 저서 <에로스의 종말>에서 오늘날 정열적인 사랑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가 ‘자아의 나르시시스트 경향이 강화되고 있어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자(他者)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나르시시즘적 주체에게 세계는 그저 자기 자신의 그림자로 나타날 뿐이다. 에로스란 나의 지배 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강한 타자를 향한 것인데, 점점 더 동일자(同一者)의 지옥을 닮아가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에로스적 경험도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혹시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사유하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영화 ‘아노말리사(사진)’를 보길 권한다. 영화는 어린이용 장르로 치부되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동일자의 지옥에서 사랑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공허라는 극히 어른스러운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영화의 주인공 마이클 스톤은 일의 성공과 행복한 가정이라는 현대 사회의 두 가지 성취를 모두 이룬 남자다. 하지만 중년이 된 지금 그가 느끼는 건 권태와 허무함뿐.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두 똑같이 들리는 것은 그의 우울감을 더하는 요소다. 택시기사, 호텔 보이, 가족, 심지어 첫사랑의 여인마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세계란 전혀 아름답지 않다.


그렇게 우울감에 빠져들던 스톤은 출장 중 머문 호텔에서 우연히 리사의 목소리를 듣는다.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리사의 목소리는 그를 일시적으로나마 구원한다. 스톤은 리사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지만, 사랑하는 자들의 서투른 첫날밤이 지난 후 스톤은 리사마저 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다시 혼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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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접근하면 ‘중년의 일탈’ 정도로 보이는 이야기는 ‘왜 스톤의 세계는 변질됐냐’ 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다른 해석의 길을 연다. 영화는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지만 힌트는 남기는데 특히 스톤이 <고객을 어떻게 대할까>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소위 ‘진상’ 고객조차 ‘아노말리(변칙·이례)’에 불과하다며 누구나 모든 고객을 훌륭하게 응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타인의 부정성을 모두 제거한 채 ‘고객’이라는 하나의 대상으로 대함으로써 일궈낸 스톤의 성공은 그렇게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 셈이다.

영화의 철학성은 형식면에서도 두드러진다. 충분히 실사영화로 해도 될 법한 이야기를 굳이 사실적이다 못해 오싹한 느낌마저 드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이유는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동일자의 지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일까. 아님 반대로 실사영화로 표현했을 때 관객들이 느낄 지독한 공포를 완화시키기 위해서일까. ‘어댑테이션’,‘ 이터널 선샤인’ 등에서도 끊임없이 자아의 문제에 천착해왔던 작가 찰리 카우프만은 이번에도 변함없이 여러 실존적인 고민거리를 우리에게 남긴다. 30일 개봉.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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