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Culture&Life]돌꽃 같은 배우 윤석화의 불꽃 같은 연극인생 40년

프리마돈나 칼라스 연기하며 위로·용기 얻어-"무대서 가장 빛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40년 기념작으로 18년전 출연한 연극 ‘마스터 클래스’ 다시 선보여

문학에 묻혀 보낸 중·고교시절이 연기 감수성 키운 자양분 돼


‘대중음악 산증인’ 이백천 만나 방송 출연하고 시엠송 부르기도

“윤석화의 연기 열정 덕에 행복했지” 그런 얘기 듣는다면 멋진 인생이죠



“예술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버리세요. 그것이 아니라면 이 분야를 떠나세요. 타협이란 있을 수 없어요.”

배역을 빌려 자신의 삶을 말하는 듯했다. 예술 앞에서 누구보다 완벽을 추구하고 자신에게 엄격했던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 그녀를 연기하는 배우가 “오 다토 뚜또 아 떼(Ho dato tutto a te·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를 외칠 때 관객은 함께 전율했다. 돌꽃(石花) 같은 배우 윤석화(사진)는 그렇게 불꽃 같은 프리마 돈나를 빌려 자신의 연극 인생 40주년을 기념했다. 자신의 이름처럼 돌(石) 틈에서 꽃(花) 피우듯 척박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40년을 알기에 연극 ‘마스터 클래스’는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연극인생 40주년, 마스터 클래스로 돌아오다=“내가 미쳤지,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왜 생각 못 했을까.”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던 3월 초, 윤석화는 부쩍 말라 있었다. 워낙 어렵기로 유명한 작품인데다 ‘40주년 기념’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부담과 긴장이 한번에 밀려온 탓이다. 마스터 클래스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오페라계를 평정한 그리스계 이탈리아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그린다. 윤석화는 18년 전 이 작품 초연에서 같은 배역을 맡아 그해 최연소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0대가 돼 18년 전 소화한 작품을 무대에 다시 올리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마스터 클래스에는 마리아 칼라스 외에 그녀에게 강의를 듣기 위해 찾아온 소피·샤론·토니·연주자가 등장하지만 대본의 90% 이상은 마리아 칼라스의 대사로 채워져 있다. “모노드라마 2편을 모아놓은 것과 맞먹는 분량이에요. 18년 전에도 정말 힘들었는데 왜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고.” 가방 안에 담긴 초록색 표지의 대본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예술혼 불태운 캐릭터 통해 용기·위로 얻어=말은 이렇게 해도 진짜 속내는 얼마 안 가 들켜버린다. “대본에서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며 신이 나게 말을 늘어놓는 모습이 천생 배우다. “작품의 기본 의미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요. 그런데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예전에는 마리아 칼라스라는 인물을 대본에 드러나는 느낌으로만 표현했다면 지금은 ‘저 여자의 깐깐함과 건방진 자의식도 외로운 몸부림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대사의 행간을 읽으며, 배우 윤석화의 삶을 얹어보며 자신의 캐릭터에 더 자연스레 젖어들 수 있었다. 고되지만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하며 위로 받는 부분도 많다. 관객의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때로는 그들의 관심이 칼날이 돼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배우 윤석화와 마리아 칼라스는 같은 처지인지도 모르겠다. 윤석화도 “마리아 칼라스를 통해 내가 스스로 위로 받고 동지애를 느낀다”며 “내가 걸어왔던 길,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용기와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와 말투가 다를 뿐 결국 도대체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느냐.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맥락이 같죠. 대사 하나하나 절절히 공감합니다.”

◇튀지 않던 문학소녀, 석화=작품에 금세 빠져 누군가의 인생에 젖어드는 천생 배우. 어린 시절 문학의 바다에 빠져 헤엄치던 소녀 윤석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애들 사이에서 인기 많던 국어 선생님이 수업 중 시를 읽다가 한 단어를 가리키며 그것이 시 속에서 의미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셨죠. 친구들은 전과에 나온 모범 답안만 달달 외웠는데 저는 정말 제가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했어요.” 내성적인 소녀를 향해 선생님은 ‘국어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때였나 보다. 더 열심히, 더 깊게 책이라는 세상에 빠지게 된 것이. “선생님이 혹여나 다른 질문을 했을 때 제 답에 실망할까 봐 웬만한 문학 전집은 다 읽었죠. 언제 뭘 물어봐도 답을 해내고 싶었어요. 그때 읽은 글들이 알게 모르게 지금 제 감수성의 좋은 거름이 돼준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가서는 단·중·장편 소설까지 썼다. 지금도 기억하는 작품이 바로 단편 ‘세코날’이다.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이 밤에 안 자려고 먹었던 각성제가 바로 세코날이었어요. ‘우린 왜 여기 갇혀 무엇을 각성하기 위해 이러고 있는가’라는 좌절과 절망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회상에 잠겨 있던 그는 갑자기 무릎을 치며 아쉬워했다. “아, 이거 안 버렸으면 제법 좋은 연극 소재인데 아깝네. 하하.”



◇우연히 맛본 연극 대본, 인생을 바꾸다=문학을 빼고 나면 튀지 않는 조용한 소녀였다. 또 계속 그렇게 살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가 다니는 대학 캠퍼스에 놀러 가 낯선 아저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윤석화가 만난 이 ‘아저씨’는 바로 ‘한국 대중음악의 산증인’ 가요평론가 이백천이다. “당시 이 선생님이 방송국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청년 프로그램인 젊음의 행진을 만들고 있었어요. 재능 있는 젊은 친구들을 발굴하던 중 우연히 저를 보고 출연을 제안했죠.” 몇 번의 거절 끝에 방송에 출연했는데 반응이 좋다 보니 방송 측에서 진행자 자리를 제안했다. “그날로 잠적했지 뭐(웃음). 난 정말 유명해지는 게 싫었던 사람이라니까.” 피하고 피했던 ‘운명’이지만 우연 같은 필연은 이어졌다. 몇 년 후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중 길거리에서 또 한번 이백천을 만났다. 시엠송 사업을 시작한 그는 윤석화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윤석화도 ‘시엠송은 누가 노래를 부르는지,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하는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무대에 한발 가까이 다가섰다. 스튜디오 옆에 입주한 민중 극단 대표가 윤석화에게 연극을 제안했고 ‘어떤 곳인지’ 구경하러, 말 그대로 ‘놀러 갔다가’ 연극판에 발을 담그게 됐다. “희곡 대본을 하나 주시는데 정말 신세계였죠. 제가 어린 시절부터 읽어온 문학 작품이 ‘안개’ 같은 것이었다면 희곡은 비를 왕창 맞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운명처럼 만난 작품이 윤석화의 연극 데뷔작인 ‘꿀맛(1974)’이다.


◇서러움으로 버틴 연극판, 배우 자양분 돼=연극인으로서의 시작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그녀를 할퀴고 상처 줬다. 배타적인 연극계에서 배곯아본 적 없는, 마냥 멋쟁이인 그녀가 ‘연극정신 투철한 동지’로 느껴졌을 리 없다. “철저한 왕따였어요. 그런데 왕따를 당해서 내가 연극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러운 일도 많았지만 그 서러움이 내가 고난을 버텨내게 한 자양분이 된 것이죠.” 그렇게 배우 윤석화는 연극 안에 제자리를 잡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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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스터 클래스’에서 주인공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하는 배우 윤석화./사진=돌꽃컴퍼니연극 ‘마스터 클래스’에서 주인공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하는 배우 윤석화./사진=돌꽃컴퍼니


40년간 수많은 작품의 주연으로 무대에 섰고 상도 배부를 만큼 받았다. 이젠 주·조연을 떠나 ‘좋은 작품에 내가 쓰인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는 윤석화는 “무대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배우였다”고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단다. 인간적인 바람도 그녀의 미소만큼이나 따뜻했다. “‘윤석화라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 그녀의 선한 열정 덕에 참 행복했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렇다면 전 정말 최고의 인생을 산 것일 테죠.”

[She is…]

△1956년 서울 △1994년 공연 제작사 돌꽃컴퍼니 설립(現 대표) △1999~2014년 월간 객석 발행인

■출연작

연극-꿀맛, 연인 안나, 선인장꽃, 신의 아그네스, 하나를 위한 이중주, 딸에게 보내는 편지, 덕혜옹주, 마스터 클래스, 나는 너다, 먼 그대 외 다수

뮤지컬-신데렐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애니, 아가씨와 건달들, 사의 찬미, 명성황후, 넌센스, 토요일 밤의 열기 외 다수

■수상 내역

△1984·1989·1991·1996년 백상예술대상 여자 연기상 △1990년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 수상 △1991년 서울연극제 여자 연기상 △1997년 배우협회 선정 제1회 올해의 배우상 △1998년 이해랑 연극상 수상 △2004년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 △2009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2013년 영국 올리비에상 작품상(뮤지컬 톱햇 공동제작)

/사진=송은석기자 songthomas@sed.co.kr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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