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롤러코스터 원화환율] 美 '환율개입'에 민감해져… 원화 치솟아도 몸사리는 외환당국

내달 美 재무부 환율보고서에 BHC법안까지 발효

"섣불리 미세조정 나섰다간 '조작국' 멍에 쓸수도"

강력한 구두개입으로 환율 묶었던 지난달과 대조

끝없이 추락하는 원달러8
원·달러 환율이 10원80전 내린 1,162원50전으로 마감해 연저점을 경신한 18일 서울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딜러들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연일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당국의 개입 강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강력한 구두개입을 통해 환율을 묶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장에서는 당국이 오는 4월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가 예정돼 있는데다 미 환율정책의 '슈퍼 301조'로 불리는 베넷-해치-카퍼(BHC·Bennet-Hatch-Carper) 법안이 발효된 점 등을 감안해 신중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서도 지금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미국의 '오해'를 살 만한 수준으로 강도 높게 시장에 개입할 필요는 없지만 쏠림현상을 완화하는 역할은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크게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2016년 네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했던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17일 올해 두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달러 가치가 주요 통화에 대해 일제히 약세로 전환한 것이다.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선 것도 달러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데 한몫했다.

우리나라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원화 강세의 기저에 깔려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8.0%로 전체 회원국 중 5위다. 독일(8.7%)보다는 소폭 낮지만 일본(2.9%)에 비해 크게 높다. 2011년 186억6,000만달러에 그쳤던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 1,058억7,000만달러까지 불어났다. 미국 금리 인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점차 걷히고 경상 흑자 등 우리 자체적인 요인까지 겹쳐 있다는 점에서 원화 강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당국의 개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국의 행보가 너무 신중하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외환시장의 한 딜러는 "2월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을 때는 당국이 강력하게 구두개입을 했는데 환율이 크게 떨어지는 지금은 그런 움직임이 없다"며 "신흥국 통화가 대부분 달러화에 강세를 보이는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국이 너무 소극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뒀던 지난해 10월 상황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다음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는 4월이다. 여기에 환율조작국에 무역보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BHC 법안도 지난달 발효됐다. 또 늦깎이로 가입을 준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환율원칙'에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라는 원화 절상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미세조정(스무딩오퍼레이션)에 나설 경우 수출을 위해 환율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줘 환율조작국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환율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2014년 4월 환율보고서를 통해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개입했다. 원화 절상 때 더 공격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10월 보고서에서는 "5~7월 사이에 대규모 환율시장 개입이 있었다"고 적시했다. 2015년 들어서는 "외환시장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보름 새 원·달러 환율이 60원 가까이 내렸음에도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는 "대체로 균형이 잡혔다"며 수위를 낮췄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너무 미국을 의식한 나머지 큰 변동성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환율이 급격히 떨어지면 수출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만큼 당국이 적정한 미세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넷-해치-카퍼(BHC) 법안이란

환율조작국에 무역 보복… 외환시장판 '슈퍼301조'


'무역법1974'를 새롭게 수정한 '무역촉진법 2015' 중에서 교역 상대국의 환율에 관한 규정을 통칭하는 법으로 약칭 BHC 법안으로 불림. 환율 개입이 의심되는 국가를 심층조사국으로 분류해 조사한 뒤 1년의 협의기간을 통해 이를 시정하도록 하지만 시정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구체적인 무역보복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근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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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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