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나폴레옹 법전…역사는 되풀이되나?



‘평생 40번 싸워 이겼다는 명예는 워털루의 패배로 사라졌다. 그러나 영원히 남을 게 하나 있다. 그 것은 나의 민법전이다.’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죽어가던 나폴레옹이 남긴 말이다. 군사전략의 천재라는 나폴레옹이 스스로 뽑은 최고 업적인 민법전은 이렇게 불린다. ‘나폴레옹 법전(Code Napoleon).’

나폴레옹의 예견대로 나폴레옹 법전의 생명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촉발된 전쟁을 경험한 유럽국가들은 물론 근대화에 나서는 국가들이 나폴레옹 법전을 모범으로 삼았다. 19세기 초반부터 독립운동을 펼친 중남미 국가들과 서구를 따라 가려는 중동국가들이 나폴레옹 법전을 모태로 국가의 틀을 짰다.


나폴레옹 법전의 최대 특징은 관습법을 폐지했다는 점. 성직자와 귀족의 특권을 인정하는 관습법을 아예 금지시켜 버렸다. 나폴레옹 법전 제정 직전 프랑스의 민법 체계는 한 마디로 우후죽순에 뒤죽박죽. 전국에 걸쳐 약 300여개의 민법이 통용되고 있었다. 북부는 고대 게르만족과 프랑크족으로부터 내려오는 관습법에 의존한 반면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남부는 로마법을 따랐다. 특히 결혼과 가정생활은 로마교황청의 통제 속에서 교회법을 준용했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수백 개로 분열된 프랑스의 사회통합을 위해 단일 법률이 필요하다는 견해는 진작부터 있었지만 막상 실행력은 권력으로부터 나왔다. 179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마자 나폴레옹 통령은 4명의 민법 전문가에게 이미 시행중이던 36개 법률을 합치는 작업을 맡긴 뒤 종신통령이던 1804년 3월 21일 ‘프랑스 민법전’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특징은 세 가지. 소유권의 절대성과 계약의 자유, 과실책임주의를 담았다. 소유권을 인정한 대목은 근대 시민사회의 정착과 사유권 제도의 인정, 자본주의의 발달로 이어졌다. 나폴레옹 실각 후 봉건제로 회귀하려는 옛 토지귀족층의 집요한 노력이 실패한 것도 민법전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소유권의 인정을 강조한 대목은 분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2,281개의 조문 가운데 ‘소유권의 취득’과 관련한 조항이 1,569개 조문에 이른다. 경제사가 윌리엄 번스타인은 역저 ‘부의 탄생’에서 개개인의 재산권을 지켜줄 법치제도의 유무야말로 나라의 흥망성쇠를 정하는 첫째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나폴레옹 법전은 피의 프랑스 혁명이 낳은 자본주의적 유산인 셈이다.


나폴레옹 법전은 간결하고 논리적인 문체로도 유명하다. ‘적과 흑’을 쓴 문호 스탕달이 문장연습을 위해 매일 읽었을 정도다.* 이름도 많다. 제정 당시에는 ‘민법전’으로 불리다 ‘나폴레옹 법전’(황제 즉위)을 거쳐 ‘프랑스 민법전’(나폴레옹 실각)으로 되돌아 온 뒤에도 ‘나폴레옹 법전’(나폴레옹 3세 등극)과 ‘민법전’(3공화국 출범)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나폴레옹 법전’으로 통칭되고 있다.

관련기사



나폴레옹 법전은 영속성으로도 이름이 높다. 나폴레옹 시대에 제정된 민사소송법(1808), 상법(1807), 치죄법(治罪法·1808), 형법전(1810) 등도 한때 나폴레옹 법전이라는 명칭 아래 포함됐었으나 무도 사라지거나 크게 개정되고 온전히 남은 것은 민법전 하나 뿐이다. 제정 당시 2,281개 조가 1971년과 1976년에 부동산개발 계약과 공유재산권 행사와 관련된 2개조가 추가돼 2,283개 항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프랑스에서도 나폴레옹 법전을 손봐야 한다는 움직임이 없지 않았다. 1904년 법 제정 100주년을 맞이해 61명의 위원회가 구성됐으나 반대가 더 컸다. 1926년에는 프랑스·이탈리아 공동의 민법안이 마련됐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2차대전 이후 드골 대통령이 마련했던 민법개정안도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자고 나면 법을 고치고, 정부 입법이 막히면 ‘여야 의원들을 꼬셔 의원입법’으로 법을 쏟아내는 풍토에서 보자니 부럽다. 뿐이랴. 죽었거나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법들도 생겨나고 있는 판국이니…. 루이 나폴레옹과 그 조카인 나폴레옹 3세 시대를 연구했던 한 철학자 겸 경제학자가 남긴 말이 귓전을 어지럽힌다. ‘역사란 가끔 되풀이되는데 처음에는 비극으로, 나중에는 희극으로 찾아온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 반대 견해도 있다. 스탕달이 나폴레옹 법전을 매일 탐독한 진짜 이유는 문장을 배우거나 익히기 위해서라 아니라 무미건조한 법 조항을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존재한다.

** 실제로는 프랑스 민법의 조항이 더욱 많다고 한다. 부득이한 경우 기존의 조문에 ‘항(項)’을 붙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골격은 유지되고 있다.

권홍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