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입사 동기 읍소에… 협력사 부탁에 외면도 못하고… ISA 불완전 판매 현실화

은행권 가입 유치 경쟁 과열… 가족·지인들에 부탁은 기본

대출 고객에도 무차별 권유

상품 설명없이 가입서만 작성… 은행직원들도 할당량에 하소연


A 보험사 직원들은 지난주 B 은행 ISA에 무더기로 가입했다. B 은행에서 A 보험사를 대상으로 특판 행사를 벌인 것도 아니었다. 이들의 가입 이유는 단 하나. '동기애'였다. A 보험사에 근무하는 이모씨는 "방카슈랑스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입사 동기가 ISA 가입 서류를 들고 다니며 읍소를 했다"며 "동기가 힘들어하는데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방카슈랑스 영업 관계에서 '을'에 해당하는 보험사 직원이 '갑'인 은행 직원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방카슈랑스 영업이 불법도 아닌 데 은행에서 판촉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보험사를 물고 늘어지는 느낌"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14일 ISA 판매가 시작된 후 초반 가입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은행들의 '무리수'가 여러 곳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가입을 부탁하는 것은 기본이고 대출 연장 등을 위해 은행을 찾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ISA 가입을 사실상 압박하는 등 과도한 영업을 하고 있다. 여기에 보험사처럼 업무 관계에서 갑을 관계로 엮인 협력사를 압박하는 사례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소 판촉물 회사에 다니는 박모씨는 "사장이 은행에 다니는 부인을 위해 ISA 가입 서류를 가지고 와서 나눠주고 작성하게 했다"며 "사장이 하라고 하니 다들 묵묵히 받아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지나친 판촉 경쟁이 불완전판매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씨는 "해당 은행 직원으로부터 어떤 설명도 들은 적이 없고 동기가 가져온 서류를 혼자 읽어보며 대충 작성했다"며 "과거 카드 가입을 강요하던 시절이야 예전 일이라고 하겠지만 금융 소비자 보호를 매일 외치는 요즘 같은 시절에 이는 명백한 불완전판매 아니냐"고 지적했다.

21일 금융투자협회·생명보험협회·전국은행연합회 등에 따르면 ISA는 판매 개시 1주일 만에 가입자가 65만명을 돌파했고 누적 가입금액은 3,200억원을 넘어섰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단연 94%로 가장 많았고 증권·보험 등의 판매 비중은 미미했다. 다만 가입 금액 면에서는 은행이 62%, 증권이 38%로 나타나 은행 ISA 계좌 중 형식상 가입에 불과한 소위 '깡통계좌'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 가능한 상황이다.

힘들기는 가입을 강요하는 은행원들도 마찬가지다. 자산 운용이나 기획처럼 영업과 무관한 부서 직원들에게까지 ISA 가입 유치 할당량이 떨어지면서 '은행원인 게 부끄럽다'는 한탄까지 나오고 있다. 은행원들은 차라리 금융 당국에서 지켜보지만 말고 불완전판매 엄단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입장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불완전판매 감시보다는 매일 금융권 ISA 판매 실적을 공개하며 판촉 경쟁에 더 불을 붙이는 느낌"이라며 "금융 당국에서 판매 숫자를 지켜보고 있는데 은행 경영진이 이런 분위기를 외면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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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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