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인공지능이 못 읽는 블랙스완

수학·공학 천재의 금융결합

자본시장 새 지평 열었지만 알고리즘 맹신탓 재앙 초래

머니게임, 연산 아닌 심리전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결 이후 금융판 알파고 바람이 거세다.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로봇이라는 회사이름만으로도 주가가 급등했다. 여의도 증권가에는 AI 수혜 주 찾기가 유행이었다면 은행가에는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이 테마였다.

금융판 AI 열풍은 알파고가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에게 완승했으니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로봇이나 컴퓨터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익률을 올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의 소산이다. 은행에 돈 맡겨 봐야 세금 떼고 나면 쥐꼬리 이자를 받는 마당이고 주식으로 눈을 돌려봐도 박스권 주가에 갇히니 말이다.

컴퓨터 알고리즘에 기반한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제 로봇이 투자자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교하게 고안된 컴퓨터 프로그램이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찾아줄 뿐이다. 따지고 보면 로보어드바이저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30여년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부 월스트리트에 등장한 퀀트(quants)가 원조다. 양(量)을 의미하는 퀀터테이티브(quantitative)의 약자인 퀀트는 수학과 공학을 이용해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매매 타이밍을 결정해주는 컴퓨터프로그램을 말한다. 컴퓨터 알고리즘에 기반한 헤지펀드나 투자분석가 또는 투자자문가를 일컫기도 한다.

금융과 수학의 결합은 수학자와 공학자가 월가에 들어오면서부터다. 냉전 종식과 아폴로 우주계획 종료로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미국의 천재들은 금융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천재들의 눈에는 금융시장의 수익률 게임이 수학과 공학의 숫자싸움과 다를 바 없었다. 금융공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최첨단 신무기로 무장한 월가는 시장평균 수익률 이상의 것, 다시 말해 '+α' 수익률을 추구하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찾아냈다. 인간의 지력으로 계산해내지 못하는 거래 리스크와 금융 상품의 가치, 투자 시기까지 한방에 해결한 금융공학에 월가는 탄성을 자아냈다. 헤지펀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퀀트에 기반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가 1980년대~1990년대 거둔 수익률은 연 2,000%에 이른다. 창업자 제임스 사이먼스 회장이 하버드대 수학교수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파생상품의 탄생 역시 천재 수학자와 공학자의 숫자놀음 덕분이다. 펀드매니저들이 꿈조차 못 꿀 경이적인 수익률을 내놓자 퀀트는 월가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완벽할 것만 같은 천재들의 창작품은 인간의 맹신과 과욕이 결합하면서 탈이 나버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와 수학교수, 채권 트레이더가 손을 잡고 만든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1998년 파산위기에 몰리기 직전까지 월가의 모든 돈을 빨아들였지만 우리나라 국민총생산(GDP)과 맞먹는 손실을 입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은행의 팔을 비틀어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LTCM의 유동성 위기는 아시아 구제금융과 맞물려 세계적 금융재앙으로 비화할 뻔했다. 2008년 지구촌을 뒤흔든 글로벌 금융위기를 확산시킨 주범 역시 퀀트다. 위기를 감지한 컴퓨터 알고리즘은 인간보다 한발 앞서 투매에 나섰지만 시장의 패닉을 증폭시켰다. 개별 회사로서는 리스크를 최소화했다지만 시장 전체를 놓고 본다면 자충수를 뒀던 것이다. 얼음같이 차가운 이성적 판단이 시장조성자의 의무와 같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턱이 없다. 1998년과 2008년 월가의 알고리즘 맹신자들은 블랙스완의 파멸적 상황을 미처 읽지 못했다.

인공지능형 투자기법은 앞으로 진화할 게 틀림없다. 크고 작은 금융 위기를 겪은 과정에서 경험한 연산착오와 투자오류를 수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는 '딥 러닝'이 인간의 감성과 도덕까지 대체하는 경지의 '딥 싱킹'으로 진화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얼마 전 만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는 AI의 한계를 이렇게 말했다. 수익률 게임의 승부는 연산 능력이 아니라 시장 심리를 읽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권구찬 증권부장 chan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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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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