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소주씩이나 한잔 하지"

"언제 한 번 소주나 한잔하지."

어느 틈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인사말에 자리를 잡고 있는 소주.

오랜 친구와 회포를 푸는 대폿집에서, 한 잔 소주에도 세상이 담겨 있기에 세상을 마셔버리자며 호기를 부리던 자리에서도,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울인 한 잔의 석양주(夕陽酒)가 목 줄기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에도 항상 소주는 서민과 함께했다.

지난 1965년 알코올 도수 30도로 출발한 소주. 지금은 절반에 가까운 16도짜리가 등장하고 병따개나 '튼튼한 이빨'이 필요했던 푸르스름한 병 색깔도 녹색으로 바뀌었지만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자리에는 여전히 소주가 등장한다.

그런데 소주가 오랜 시간 지켜온 '서민의 술'이라는 애칭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12월 국내1위 소주 업체인 하이트진로가 '참이슬' 출고가를 961원70전에서 1015원70전으로 올리면서 3년간 묶여 있던 소주값 인상의 스타트를 끊었다. 이후 대전·충남 지역의 맥키스컴퍼니, 제주 한라산소주, 부산·경남의 무학 등이 인상 대열에 합류하면서 웬만한 소주가 모두 병당 1,000원을 넘어섰다.

출고가 인상이 시작된 지 100여일이 지난 지금. 주요 편의점은 한마음 한뜻으로 소주값을 기존의 1,500원에서 1,600원으로 인상했다. 서울 강남 등 술집이 밀집한 동네에서는 병당 5,000원을 받는 곳이 눈에 띄게 늘면서 출고가가 50원 오르면 도매점은 100원~200원, 소매점은 1,000원 올랐던 '소주값 인상의 법칙'은 이번에도 예외를 허락하지 않았다.

'원샷은 사치다' '조금이라도 남으면 키핑을 해야 한다' 등 당황스럽다는 목소리와 함께 '이미 올라버렸는데 어쩌겠느냐'는 체념과 현실 타협적인 의견도 들린다.

하지만 이번 소주값 인상을 순순히 받아들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업체들이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원가 상승. 하지만 소주의 주원료인 에탄올 원액, 즉 주정은 3년째 비슷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고 주정용 쌀과 보리의 가격은 지난 3년간 30% 가까이 내려앉았다.

이처럼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서민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서민 증세로 이어진다. 출고가격의 절반이 넘는 53%가 세금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업계의 자율적 판단으로 값이 오른 모양새지만 주류가격의 경우 물가상승 우려 등을 감안해 정부가 통제권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2013년 정부는 소주를 통해 1조6,500억원의 세금을 거둬들였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이번 가격 인상으로 연간 928억원의 증세 효과가 발생한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이를 근거로 국세청에 인상 근거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국세청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팍팍한 살림살이 좀 나아지고 치솟는 전·월세가에 밤잠 설치지 않아도 된다면 이참에 술 끊어보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허리띠 졸라매도 가계빚은 늘어만 가고 내 집 하나 마련하려면 십수 년을 손가락만 빨고 살아야 하는 현실. 이래저래 술 끊기는 어려울 듯싶고 이제 인사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주씩이나 한잔하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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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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