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사라지는 것과 유행하는 것의 차이

[FORTUNE’S EXPERT] 안병익의 ‘스마트 라이프’


유행의 확산은 한순간에 이뤄진다.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여 홍보활동을 하는 것만이 흥행을 이끌고 유행을 선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미스터 고’와 ‘7번 방의 선물’은 광고와 흥행이라는 측면에서 대비되는 작품이다. ‘미스터 고’는 영화 ‘오! 브라더스’와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를 잇달아 흥행시키며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김용화 감독의 작품이다. 그런 김 감독이 작품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블루칩의 전설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을 것이다. 김 감독 또한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을것이다. 흥행몰이를 하기 위해 다각도의 홍보를 진행했겠지만, 막상 개봉 이후의 실적은 전작 흥행을 잇지 못했다. 관객 수는 130만 명이 고작이었다.

반면 같은 해 개봉한 영화 ‘7번 방의 선물’은 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별다른 광고나 홍보 없이도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수가 1,280만 명을 기록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을 통해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같은 댓글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고, 또 입소문이 퍼지면서 영화 ‘7번 방의 선물’은 꼭 봐야 하는 국민영화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이른바 사람들의 ‘동조심리’가 작용하면서 안보면 안 되는 영화가 된 셈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할 때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SNS로 개인과 개인이 서로 연결되면서 이런 현상들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영화 관객 수가 1,000만이 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현상, 줄을 서서 먹는 맛집, 한때 없어서 못 팔았던 벌꿀 맛 감자칩 열풍 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정한 요인에 의해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영화나 유행의 확산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경향이 강하다.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다른 말로는 오피니언 리더라고 하는데,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SNS상에서 빠른 확산을 끌어내기 위해선 이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을 찾아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트위터에선 전체 가입자의 0.05%에 불과한 2만 명의 영향력자가 올린 글들이 트위터 내에서 유통되는 전체 글의 50%를 차지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향력자에 의해 SNS 상의 특정 정보가 확산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호주 출신 사회학자 던컨 와츠의 유튜브 영상 전파과정 분석 연구에선 조금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영향력자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들이 수천만의 사람들을 영상 시청으로 이끌어낸다고 밝혀낸 것이다. 인맥이 넓은 사람, 우리가 흔히 마당발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영향력이 큰 것과도 상관관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력자 가설(influentials hypothesis)’은 소수의 특별한 개인들이 다수의 일반적인 개인들의 의견, 신념, 행동 양식 등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던컨 와츠는 정보의 확산이 특정한 유력자라는 단일 요인보단 다양한 요인들이 우발적으로 결합해 나타나는 것이라며 ‘우발적 유력자(Accidental influentials)’ 또는 ‘영향력의 폭포(Cascade of influence)’라는 신개념을 제시했다.

우리는 대개 정보의 흐름을 대중 매체에서 허브로, 허브에서 대다수 대중에게로 확산되는 단(單)방향의 흐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세상이 그렇게 움직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인간관계 네트워크에선 단선적인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방향으로 정보를 얻고 전달하며 소규모로 서로 연결된 그룹들이 모여 전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론 네트워크 내에서 각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각자는 또 다른 네트워크에 속해 있으며, 수많은 네트워크가 서로 연결되어 영향력이 전파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상에서 확산이 이뤄지는 과정은 소수의 영향력자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웃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 이것은 일종의 연쇄반응과 유사하다.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특정한 정보나 경향을 받아들이고, 이웃에게 전달하고, 그 정보가 지속적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는 것이다.

예컨대 휴대폰 회사가 좋은 신제품이 나왔다고 TV 광고를 해도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믿을만한 친구가 “내가 써보니 정말 좋다”고 한다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가 어떤 영화가 “정말 재미있다”고 한다면 그 정보는 나에겐 확신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 정보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연쇄반응처럼 전파된다. 영화 ‘7번 방의 선물’이 마케팅이나 홍보가 아닌 입소문에 의해 흥행에 성공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미국의 랩 가수 겸 프로듀서인 스쿠터 브론의 말이 인기의 기폭제였다. 그가 트위터를 통해 “이 뮤직비디오가 얼마나 놀라운지 말로 설명 할 수 없다”고 극찬하자 팬들의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어 로빈 윌리암스, 조쉬 그로반 등 해외 유명 인사들이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트위터에 올리자 그 확산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싸이는 전세계 유명인사가 됐고, 지금도 깨지지 않는 유튜브 조회 수 25억이라는 신기록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서 스쿠터 브론을 포함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확산의 기폭제 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이 또 하나 있다. 영향력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전 과정이다. 콘텐츠 확산 단계를 보면 초기에는 혁신적인 허브에 의해 전달이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추종자 허브, 그리고 영향력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모든 콘텐츠의 확산은 이런 과정을 거쳐 널리 이뤄지게 된다.

얼마 전 국내에서 크게 히트했던 걸그룹 EXID의 노래 중 ‘위아래’라는 것이 있다. 이 노래는 놀랍게도 3년 전에 나왔던 노래다. 같은 춤, 같은 노래, 같은 멤버였지만 3년 전에는 아무도 몰랐다. 이 무명그룹은 노래가 나온 이후에도 군부대 위문 공연이나 각종 행사장 같은 곳을 다녔지만 계속 주목받지 못하는 무명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군부대 위문 공연 영상을 관람객이 직접 찍어 SNS에 올리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이 영상은 순식간에 SNS를 달궜고 얼마 뒤에는 ‘가요차트’ 정상의 자리까지 오르는 빅히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3년 전에도 분명 같은 콘텐츠였을텐데, 왜 그 땐 성공을 못 하고 3년이 지난 후에야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3년 전에는 확산과정에서 제대로 확산 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수백개 이상의 걸그룹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걸그룹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아는 수준으로 인기를 얻기 위해선 임계점을 넘어서 확산이 이뤄져야 한다. 확산의 임계점을 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노래도 우리 귀에 들리지 못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안병익 씨온 대표는…
국내 위치기반 기술의 대표주자다. 한국지리정보 소프트웨어협회 이사, 한국공간정보학회 상임이사, 한국LBS산업협의회이사를 역임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포인트아이대표이사를 지냈고, 지난 2010년 위치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씨온을 창업해 현재 운영 중이다.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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